1.
초기 자동차 시장을 보게 되면 우리는 먼저 포드자동차의 모델 T를 생각한다. 그러나 모델 T 이전에도 자동차는 있었다. 다만, 대량 생산되지 않고 매우 소규모로 제작, 생산되어 소수의 한정된 사람들만이 구매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때의 자동차는 그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모델 T가 뛰어난 성능과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지배하게 되자 그 이후에 나타난 자동차들은 기본적으로 모델 T를 닮게 되었다. 즉 모델 T 이후의 자동차들은 동력 장치, 동력 전달 장치, 조향 장치 등 기본적 속성이 동일했고, 다만 색상이나 내장재 등과 같은 세세한 부분에서만 차이를 보였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자동차의 성능은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속성은 동일함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시장 지배자는 제품의 정체성과 핵심적 기능을 규정하고, 다른 업체들도 이를 쫓아오고 있다는 면에서 ‘표준’과 개념을 같이하고 있다.

2.
그런데 MS의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의 경우 우리는 별다른 고민 없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입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밴드웨건 효과(band wagon effects)’라고 한다. 밴드웨건은 서커스 행렬의 맨 앞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분위기를 띄우는 악대 차이다. 따라서 밴드웨건 효과는 특정 상품을 구매할 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그 상품을 구매했는가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일종의 심리 현상이다.

3.
이 변기는 우리 생활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소변만으로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지문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사람들의 엉덩이문(hip-print)도 모두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변기는 사람의 엉덩이가 닿는 순간 등록된 가족 구성원 중 누구의 소변인지를 인식해 해당 정보를 병원에 전송하게 된다. 이러한 변기가 모든 가정에 보급되면 이제 남자들도 앉아서 소변을 봐야 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변기는 전통적인 변기인가, 의료기기인가, 아니면 정보통신 기기인가? (앞으로 이와 같은 산업의 분류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4.
일본의 자전거 제조업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비교적 잘 운영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자전거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급격히 잃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54년 일본정부는 자국의 자전거 제조업체들이 우수한 유럽산 자전거와 경쟁할 수 있도록 자전거의 일본 공업 규격(JIS)을 제정했다.
JIS는 자전거를 크게 14개 부품으로 나누고, 각 부품들도 평균 18개 부분품으로 구성하도록 하여 거의 모든 자전거 부품에 대한 규격을 상세하게 정했다. 이러한 상세 규격에 따라 일본의 중소 자전거 제조업체들은 균일한 품질의 자전거를 제작할 수 있었고, 당연히 자전거 품질도 향상되어 유럽 제품에 대항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표준화 정책이 성공을 거두자 일본정부는 지속적으로 표준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준화 정책으로 일본의 기업만 이득을 본 것은 아니었다. JIS는 지구상의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고, 또 모든 부품에 대해 상세한 규격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중국과 대만의 제조업체들도 동일한 규격으로 자전거를 생산할 수 있었다. 1990년 자전거 관세가 폐지된 이후 일본의 자전거 시장은 중국과 대만 업체에 의해 심각하게 잠식되었고, 1998년에는 중국이 최대 수출국이 되었다. 2000년에 이르러서는 수입액이 국내 생산을 넘어섰고, 마침내 최근에 이르러 일본의 자전거 조제품 업체는 거의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5.
그런데 주의력 있는 승객의 경우, 지하철 1호선은 지하 서울역에서 지상 서울역으로 오고 갈 때, 지하철 4호선은 남태령역에서 선바위역으로 오고 갈 때 실내등이 꺼졌다가 다시 켜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전동차 운행이 지하철 공사와 철도청으로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공사는 직류 1,500V를 사용하고, 철도청은 교류 2만 5,000V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경계에서 직교류 교환 장치가 작동된다. 문제는 승객들이 느끼는 불편함뿐만 아니라 그 비용에 있다. 이 교환 장치 때문에 전동차 1대당 1억 5,00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또 다른 문제는 지하철의 운행 방향이 우측통행인 반면, 철도청의 운행 방향은 좌측 통행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지하철 구간과 철도청 구간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선로를 X자로 서로 엇갈리게 건설했고, 이로 인해 4호선의 경우 완공 시기가 6개월 더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공사비도 일반 구간보다 30% 이상 더 늘었다.

6.
2월 7일 일요일 오전 10시경 볼티모어 시내에 위치한 허스트 빌딩 지하에서 시작된 화재는 1시간도 못 되어 시 전체를 삼킬 듯이 확산되었다. 이에 화재를 진압할 소방차가 부족함을 인식한 볼티모어 시는 인근 지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워싱턴 D.C., 뉴욕, 필라델피아 등에서 온 소방차의 연결 호수는 볼티모어 시의 소화전과 규격이 맞지 않았다. 당시까지 미국의 각 주는 자체적으로 소방 장비에 대한 표준을 정했고, 서로간의 호환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하루 만에 진화할 수 있었을 화재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진압되었고, 그 결과 70블록에 걸쳐 1,500개 이상의 건물이 잿더미가 되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표준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미국은 1년 후 소방 안전 장비에 대한 국가 표준을 만들었다.

7.
ATX 규격(인텔이 발표한 마더보드 규격)에 대한 대만 업체의 참여는 인텔에 선순환의 효과를 주었다. ATX 규격 덕분에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마더보드를 구매할 때 특정 공급업자의 제품을 구매할 필요가 없어졌고, 따라서 공급업자 간의 경쟁이 일어났다. 또한 대만 업체들의 참여로 ATX 규격의 마더보드가 대량 생산되었다. 공급업자들 간의 경쟁과 대량 생산으로 마더보드 가격은 하락했고, 이는 PC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PC 가격이 낮아지자 최첨단 PC 수요가 늘어났고, 이 수요 증가는 인텔의 수익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8.
핵심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보완재 시장은 경쟁이 치열해야만 유리하다. 보완재 시장이 독과점의 형태를 띠게 된다면 보완재 시장의 성장은 이들 독과점 기업에 유리한 형태로 결정되고, 그에 따라 핵심 시장의 성장도 이들 기업의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핵심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이들 보완제가 제품(product)보다는 일상재(commodity)적 성격을 띠도록 만들어야 한다. 보통, 제품과 일상재를 구분하는 기준은 ‘브랜드가 제품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느냐’에 있다. 예를 들어, 진통제를 구입할 때 특정 브랜드의 진통제를 원한다면 그 진통제는 제품이다. 반면, 특정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고 아무 진통제나 구입하려 한다면 일상재가 된다. 상품이 제품화되면 차별화 전략이 가능하지만, 제품이 일상재화되면 기업은 비용 우위 전략 이외에 다른 전략을 추구하기 어렵다.
이처럼 일상재가 된다는 것은 차별화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고 보완재를 일상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완재를 생산하는 모든 업체들이 제품을 생산할 때 표준화를 통해 동일한 규격을 적용 받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일상재가 되는 시장에서는 반드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따라서 시장의 주도권은 핵심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서 가져갈 확률이 높아진다.

9.
오랜 연구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CD도 표준을 정하는 데 최첨단 기술력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CD를 제작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음악 재생 시간과 관련 있는 CD의 직경이었고, 이 CD 직경과 용량 표준화의 기준은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었다. 당초 필립스 연구진은 LP판보다 용량이 큰 1시간 분량의 11.5cm CD를 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의 중 소니의 노리오 오가 부회장이 음악을 기준으로 삼자며 <합창>을 예로 들었다. 당시 베를린 필의 지휘자였던 카라얀의 연주는 66분이 걸렸으나, 필립스의 자회사인 폴리그램에서 확인한 결과 최장 연주 시간은 74분이었다. 결국 74분 이상의 음악 재생 시간을 담기 위해 직경 12cm CD 표준이 확정되었다.

10.
DVD플레이어 시장의 경우, 일본기업의 주도로 표준화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우수한 생산 시스템을 갖고 있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저가 상품 시장에서는 중국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DVD플레이어 완성품시장에서는 표준화를 주도했던 일본기업들이 충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많은 일본기업들은 컨트롤 칩셋, 광픽업, 레이저 다이오드 등 DVD플레이어의 핵심 부품에 대한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거나, 아예 블랙박스로 두어 비공개로 하면서 대부분의 세계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략은 표준화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특허나 기술의 비공개로 차별화된 부품을 제공함으로써 표준과 특허를 성공적으로 절충한 것이라 하겠다.

강병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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