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완성된 것은 단순한 성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열의와 심혈을 기울였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2.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없어요.”
이 말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그 어떤 것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 중의 하나다. 즉,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세계가 좋아서 견딜 수 없을 때에는 자신이 속해 있는 분야와 관련된 모든 것이 궁금해지고 나름대로의 걱정도 하게 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면 인테리어업계의 역사를, 건축가라면 건축업계의 역사를 풀어헤쳐 보고 싶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다.

3.
오사카에서 일을 하다 문득 생각했다. 녹이 슨 테이블 다리를 철솔로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나는 지금 낡은 것을 새것에 가깝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낡은 것을 새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것만으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하얀 벽이 더러워졌다고 하자. 이것을 다시 하얗게 만들고 싶을 때, 세제 등을 이용하여 ‘얼룩을 닦는다’는 생각과, ‘하얀 페인트를 사용하여 덧칠을 한다’는 생각이 있다. ‘새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하나는 ‘새것’, 또 하나는 ‘낡지 않은 것’. 열심히 녹을 벗겨 내던 도중에 ‘너무 심하게 벗겨 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D&DEPARTMENT의 고객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아마도 새것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고풍스러우면서 깨끗한 것이 아닐까.

4.
현명한 상인은 경쟁 상대를 만든다.

5.
‘위기일발’이라는 인기 게임이 있다. 통에 칼을 찔러 해적이 튀어나오면 패배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위기일발 게임이 있지요? 통에 칼을 찔러서 검은 수염의 해적이 튀어나오면 패배하는 게임말입니다. 하지만 해적이 튀어나오는 것을 승리로 정하면 패배가 아닌 승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규칙을 그렇게 바꾸면 간단한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38년 동안, 나는 줄곧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검은 수염을 가진 해적이 튀어나오는 경험도 몇 번이나 있었고. 사실 이 게임에 정답은 없다. 게임설명서에 ‘승패’가 기재되어 있다면 몰라도. 38년 동안 칼을 찌르면서 ‘위험해! 지겠어!’라는 생각에 초조해했던 것이 어쩌면 ‘됐어. 이길지도 몰라!’라고 생각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견해만 바꾸면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는 상황은 인생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6.
‘꿈이란 평범한 노력을 통해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물론 돈으로도 살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몸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을 시켜 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문제부터 여행과 같은 큰 문제까지,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탁하기 어려운 그런 문제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이런 서비스는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받는 쪽은 상대방이 아무리 자원봉사자라고 해도 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사실은 저 곳에 가보고 싶지만 솔직하게 요구하기 어렵다. 그런 경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돈을 지불해도 좋다. 내가 가고 싶은 장소에 가고 싶을 때에 마음껏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켜 줄 사람이 있다. 꿈을 돈으로 실현시켜 주는, 바로 그 사람이다.
사실,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도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을 내걸 경우, 받는 사람의 입장이 편할 리 없기 때문에 굳이 돈을 받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꿈’은 ‘평범하게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7.
엄청난 기세로 가속화되는 느낌. 그것은 감동이었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도 재미있다. 금발의 청년, 귀여운 느낌의 여성, 전형적인 아주머니, 그리고 넥타이를 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아저씨. 물론 그중에는 음악가처럼 보이는 멋진 신사도 있었다. 그 ‘소리’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일까. 물론 일본필하모니교향악단이라는 ‘회사’로부터 급료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각자 예를 들면, 다른 장소에서 음악 교실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음악과 관계가 없는 다른 일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일본필하모니교향악단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생활이 보장될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문득 내가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회사가 떠올랐다. 우리 회사가 이 일본필하모니교향악단이라는 집합체라면 사원들 각자는 여기에 모여 참가하는 데에 의의와 긍지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모이지 않는 날은 각자 나름대로 연습하는 한편 다른 일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여기에 모이는 이유는 완전한 ‘공연’을 위한 것이고 연습을 하기 위해 여기 모이기 전에도 각자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할 것이다. 충분한 연습을 하고 ‘연습’을 위해 모이고 ‘공연’이라는 무대를 맞이 한다.

8.
이런 체험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사지숍의 경우 ‘다섯 명 한정’을 내세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기본적인 관찰을 하고 ‘예약 취소가 발생했다’며 접수를 하는 것이 아닌가. 또 민박집의 경우에는 일부러 끝나지 않는 회원 등록을 만들어 놓고 결과적으로 직접 메일을 주고받게 하여 예약을 받는 것이 아닌가.
언뜻, 일방적으로 거절을 당한 것 같지만 결과가 이런 형식으로 끝난다면 기분 나쁜 일이 아니다. 이쪽이 ‘단순한 고객’으로서 교섭이나 예약, 의뢰를 한다. 이 ‘연락한다’는 최초의 접점은 그 이후의 인상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부러 거절을 하고 시간을 둔 다음에 연락을 한다거나 일단 화가 나도록 유도한 다음에 순조로운 절차를 통하여 그 불만을 해소해 줌과 동시에 감동과 만족을 안겨 주는 방법.
하루에 다섯 명. 완전예약제. 말은 그렇지만 사실은 50명을 받는지 100명을 받는지 알 수 없다. 단, 예약을 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설사 40명째에 해당한다고 해도 결국 ‘귀중한 다섯 명 안에 해당하는 사람’이 된다. 더구나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이유에서 그날 마사지를 받게 된다면 자기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달려갈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9.
옛날에는 먹을 수 없던 음식이 어느 틈에 기호 식품으로 변하거나, 어린 시절 ‘맥주는 쓰기만 한 음료’라고만 생각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성인이 되면 맥주의 시원한 맛을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간도 변하고 유행도 변하고 우리들 자신도 변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10.
직원들과 점장은 매년 사장 나카오카가 화를 내지 않도록 ‘약간 다른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표현’하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언제였던가. 그 해 크리스마스에 도쿄 본점의 사이토점장은 약 200개의 양초를 입구에 밝혔다. 실제로 해 보면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양초들은 어떤 트리나 네온보다 훨씬 더 멋져 보였다.

11.
예전에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내게 일을 맡기고 싶으면 내가 있는 장소로 오라.”고 말하고 취재에 응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것은 ‘맡기고 싶은 일’이 ‘잡무로서의 일’인지,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따라 탄생하는 작품’인지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후자에 해당한다면 고객은 당연히 그 디자이너에 관하여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또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창작 환경을 살펴보고 판단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은 오만이 아니라 일종의 프리젠테이션으로서 판단 재료로 삼아달라는 메시지다.

12.
20대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다. 당시에는 오직 주변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고 보면 30대는 어쩌면 ‘주변과 자신’ 40대는 ‘자신과 사회’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50대는 ‘사회’, 60대는 ‘자신’이 아닐까.

나카오카 겐메이
이정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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