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것은 “열 개의 사과 가운데 세 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느냐”는 산수 문제이다. 역시 한국에서는 산수도 먹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세 개가 남았다고 대답한 아이다. “세 개를 먹었는데 어떻게 세 개가 남을 수가 있느냐”는 선생님의 추궁에 대해서 아이는 거침없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요. 먹는 게 남는 거래요.”

2.
호저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가 돋친 초원의 동물이다. 추운 겨울에는 몸을 덥히려고 가까이 다가가다가 가시에 찔리게 되고 멀리 떨어져 혼자 있으면 추위와 외로움에 떨게 된다. 그래서 너무 가까워 찔리지도 않고 너무 멀리 있어 춥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낸다.

3.
냅스터나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 사이트들이 오프라인의 음반업자와 충동하여 법정으로 가는 사태가 벌어지면 오히려 그 긴장 관계를 이용해서 ‘아이포드’와 같은 신개념 제품이 전 세계 히트 상품으로 부상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워크맨 같은 오프라인 휴대 음악 재생기를 온라인의 인터넷 음악사이트에 연결시키는 디지로그 발상 하나로 세계를 뒤엎었다. 그래서 퓨전(fusion)을 미래의 비전, 즉 퓨처 비전(future vision)의 준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4.
돈과 말과 피의 글로벌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미 2000년 전 『여씨춘추』에서도 엿볼 수 있는 거대 담론이다. 활을 잃어버렸던 형(荊)나라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형나라 사람이 잃은 활을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니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잃은 것을 사람이 주울 것이니) “형나라라는 말은 빼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공자의 말을 들은 노자가 말했다. (천지의 것이 천지에 있으니) “사람이란 말은 빼는 것이 좋다.”

5.
‘천평어람(天平御覽)’ 등에 실려 있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고사에서 충격적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다. 제(齊)나라에 사는 한 처녀가 두 남자에게 청혼을 받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동쪽 마을에 사는 청혼자는 돈은 많으나 얼굴이 밉고, 서쪽 마을에 사는 청혼자는 얼굴은 잘났지만 가나해 먹을 것이 없다고 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부모의 말에 그 처녀는 선뜻 동과 서 두 곳으로 다 가겠다고 대답을 한다. 밥은 부잣집 동쪽 남자에게 가서 먹고, 잠은 잘생긴 서쪽 남자와 자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동서병합의 모순논리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해보면 틀림없이 에러 메시지가 나올 것이다. 동가식서가숙의 이 고사가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졌으면 오늘날에는 “아무 데서나 먹고 자며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뜻이 바뀌었겠는가.
그러나 21세기 상황에서는 동에서 먹고 서에서 자는 불량주부형의 겹치기 기술이 예사롭게 벌어진다. 전화 기능에 카메라와 녹음기와 음악을 재생시키는 오디오 장치가 한 손 안에 동거하고 있는 휴대전화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절대로 동석할 수 없었던 팝과 오페라가 같은 무대에서 만나는 팝페라처럼 예술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 현상. 바이오 기술로 메추리와 닭을 하나의 생물로 만들어내는 이종배합(異種配合)의 ‘키메라’ 현상. 평지에서는 건전지로 움직이고 고속도로나 언덕에서는 휘발유로 달리는 ‘하이브리드 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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