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은 축구 종주국이지만, 1990년까지 강력한 프로리그가 없어서 독일의 분데스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A,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에 밀려 축구의 주변국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91년, 영국은 종주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리그를 출범시킨다. 이것이 프리미어리그이고, 그들의 전략은 적중하여 이제 프리미어리그에 세계가 열광한다. 세계인들에게 가장 흥분되고, 짜릿짜릿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던 것일까?
첫째, 모든 것을 개방했다.
현재 프리미어리그는 20개 구단 가운데 3분의 1이 외국인 구단주다. 감독은 50%, 선수는 60%가 외국인이다. 대표적인 명문팀 첼시는 개막전 출전 선수 전원을 외국인 선수로 내보낸 적도 있다. 그들도 자국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든지 외국인 방어장치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둘째, 엄격하게 평가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20개 팀으로 운영되며, 2부 리그인 챔피언십리그는 24개 팀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1, 2부의 넘나듦이 매우 심하다. 매 시즌이 끝나면 1부의 하위 3팀이 2부로 강등되고, 반대로 2부의 1,2위 팀은 1부 리그로 자동 승격된다. 1부 리그의 남은 한 자리는 2부 3~6위 팀의 플레이오프 승자가 차지한다. 간단히 말해 매 시즌마다 3개 팀이 리그를 오르내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떨어지면 안 된다는 절체절명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유럽 축구선수들은 어떤 경쟁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2.
“창의력이란 여러 가지를 연결하는 능력이다.” –스티브 잡스

3.
1991년, 일본의 아오모리 현. 일본 최대의 사과 생산지이기도 한 이 곳에 엄청난 태풍이 몰아쳐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낼모레 수확을 앞둔 사과의 90%가 소실될 정도였다. 마을사람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하늘을 보며 ‘망했다’고 한탄만 할 뿐, 아무도 손을 써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떤 농민 한 사람은 비교적 차분했다.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냐?’는 시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그 농민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아직 떨어지지 않은 10%의 사과가 있잖아.”
“그걸로 어쩌려고?”
“우리가 말이야, 만약 이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떨어지지 않는’ 사과로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 예를 들면 수험생 같은 사람들에게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합격사과’를 만들어 팔면 말이야.”
마을주민들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래 사과는 박스 단위로 포장하는데, 아오모리 사람들은 살아남는 사과가 얼마 안 되니까 한 개씩 낱개로 포장했다. 그러고는 모자라는 것은 재미있고 감성적인 문장으로 채웠다.
‘초속 40m의 초(超)초(超)강력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았던 바로 그 사과! 내 인생에 어떤 시련이 몰아친다 해도 나를 떨어지지 않게 해줄 그 사과, 합격사과.’
이 합격사과는 무려 10배나 비싼 1만 원으로 책정했고 다 팔렸다. 결국 합격사과는 태풍으로 생긴 90%의 손실까지 만회하며 그 해 일본의 대표적인 입소문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4.
남자다운 두부, 오토코마에
이 두부는 이토 신고 사장의 작품이다. 그는 아버지가 하는 두부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 마케팅 책임자로서 그는 특별한 프로모션도 해보고, 독특한 두부도 많이 만들어보았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두부는 영원히 ‘100엔’ 고정이었다. 맛에 승부를 걸고, 영업을 열심히 해도 그것만으로는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가 별짓을 다 해보고 고생 끝에 얻은 결론은 ‘결국 두부에도 남다른 세계관을 넣어야 한다.’ 이것이었다.
그는 고민했다. ‘두부의 세상에 도대체 뭘 갖다 붙일 것인가?’ 그러다가 엉뚱하게도 두부와 가장 멀리 있는 존재에 눈길 갔다. 바로 남자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남자다운 두부’다.
“진정한 오토코마에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5.
삼성 성공의 일등공신은 2006년 출시된 ‘보르도 TV’다. 제품을 개발할 당시, 직사각형 일변도를 탈피해 V자로 파고, 거기에다 받침을 붙여보니까 ‘왠지 와인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와인 컨셉을 차용하기로 했다. 또 그냥 우기면 힘이 없으니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 산지 ‘보르도’를 이름으로 붙여서 컨셉을 강화한 다음, 시장에 선보였다. 이처럼 별것도 아닌 시도를 했는데, 세계인이 반응하더라는 것이다. 보르도 TV의 실적은 결코 적당히 우수한 수준이 아니다 최단기간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데 이어 출시 첫해에 연간 300만대가 팔려나간 대기록을 세웠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TV 부문 세계 1위’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6.
나이키에 가면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우리가 파는 것은 신발이 아니라 ‘승리(victory)’다.”

7.
세계적인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평범이다. 우리가 자기계발을 하지 않아 평범해진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사명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평범해질 틈이 없다.’

8.
예전에 스타벅스 매장에서 안 쓰는 장난감을 가져오면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준 적이 있다. 많은 엄마들이 장난감을 싸들고 아이 손을 잡고 버스를 타가면서 스타벅스에 왔다. 그녀들은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했을까? 그들은 자신의 작은 수고로 장난감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에게 작은 기쁨을 줄 수 있다는 ‘행복한 마음’때문에 움직인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네가 더 이상 쓰지 않는 장난감을 그냥 썩혀두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훨씬 더 아름다울 거야.”

9.
줄탁동시(啐啄同時)
어미가 품에 안은 알 속에서 조금씩 병아리가 자랐다. 이제 세상 구경을 해야 하는데, 알은 단단하기만 하다. 병아리는 나름대로 공략부위를 정해 쪼기 시작하지만, 힘에 부친다. 이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닭은 그 부위를 밖에서 함께 쪼아준다. 답답한 알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병아리는 어미의 도움으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밖에서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발생해야 일이 완성될 수 있다는 고사성어가 바로 ‘줄탁동시(啐啄同時)’다.

10.
두바이는 사막지대여서 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 사는데, 해안선 길이가 고작 71km밖에 안 됐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제외하고도 2,500km에 달하니 두바이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두바이는 간척사업을 하면서 해안선 길이를 획기적으로 늘리기로 하고, 목표를 설정했다. 그 목표는 무려 20배였다. 71km에서 1,500km. 해안선의 길이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방법을 찾다가 나온 것이 ‘더 월드’나 ‘팜 아일랜드’같은 요상한 모양의 인공섬 군락이다. 섬의 세계지도나 야자수 이파리 모양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엄청난 목표가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서 해안선을 20배 늘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11.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은? 물론 에베레스트다. 그 높이가 8,848m로, 백두산보다 3배나 더 높다. 이 산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정한 사람은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로, 1953년에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한국인이 처음 등정에 성공한 것은 1977년으로, 고(故) 고상돈 대원이 세계에서 58번째로 족적을 남겼다. 힐러리보다 24년 후에 올랐는데 그 등수가 58등이라면, 매년 2.4명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요즘은 1년에 몇 팀이나 에베레스트에 오를까?
2004년 330명, 2006년 480명, 2008년 600명이라는 기록이 마지막이다.
왜 이렇게들 많이들 올라갈까? 그 이유는 베이스캠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힐러리나 고상돈 대원이 등정을 시도하던 시절에는 베이스캠프 높이가 예외 없이 해발 3,000m 이하였다. 그들은 약 6,000m를 더 올라가야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보통 5,200m, 세게 치는 사람은 6,000m 이상에도 베이스캠프를 친다. 남은 거리는 이제 3,000m가 채 되지 않는다. 옛날에 비해 순등정거리가 절반 이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12.
완행열차 –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13.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은 이렇게 말했다.
“난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는 일에는 이미 이골이 났습니다. 내가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그 디자인을 헐뜯고 비난했죠. 그런데 그렇게 욕하던 사람들도 결국 내가 만든 옷을 입더군요.”


강신장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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