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는 수수께끼 같은 동물이다. 포유류 가운데서도 돌고래는 몸집에 비해 뇌의 부피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침팬지의 뇌 무게가 보통 3백75그램이고, 사람의 뇌 무게가 1천4백50그램인데 비해, 돌고래의 것은 1천7백그램이다. 그런 정도의 뇌를 가지고 있으니, 돌고래는 기호를 이해하고 언어를 만들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럼에도 돌고래는 그 지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작해야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벌이는 쇼에 출연하여 사람들의 놀이를 흉내내거나 서커스 묘기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지능은 정말로 스스로에게 아무런 도움을 못 주는 것일까?
 돌고래는 포유강 고래목(目)에 속한다. 한마디로 바다에 사는 포유류 동물이다. 그들도 마치 우리처럼 공기를 들이마시고, 암컷들은 새끼에게 젖을 먹이며, 알을 낳지 않고 임신과 출산을 한다. 돌고래의 조상은 옛날에 육지에 살았다. 그들에겐 다리가 있었고, 땅 위를 걷고 뛰어다녔다. 그들은 아마도 악어나 바다표범과 비슷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땅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까닭에서인지, 그들은 물 속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육지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처럼 물에서 나와 육지에 잘 적응해 가더니, 그래도 역시 물이 더 살기 좋다고 생각했는지 훌쩍 떠나 버린 것이다.
 1천7백 그램에 달하는 커다란 뇌를 가진 그들이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육지에 남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들의 우리의 경쟁자나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고, 전자보다는 후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런데 돌고래는 왜 바다를 택했을까?
 바다는 확실히 육지보다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 육지에서 우리는 땅바닥에 붙어 살지만, 바다에서는 3차원 속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또 바다에서는 옷도 필요 없고 집과 난방 설비도 필요치 않다. 바다에는 먹이도 풍부하다. 돌고래가 정어리 떼에 다가가는 것은 우리가 슈퍼마켓에 가는 것과 같다. 단지 돌고래는 공짜로 먹이를 구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돌고래의 뼈대를 조사해 보면, 지느러미 안에 길쭉한 손가락뼈가 아직 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육지 생활의 마지막 흔적이다. 그 부분의 변화가 돌고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손이 지느러미로 바뀜으로써 돌고래는 물 속에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겠지만, 그 대신 더 이상 도구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기관의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어내는데 그토록 열을 올렸던 것은, 우리 환경이 우리에게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 속에서 행복을 되찾은 돌고래는 자동차나 텔레비전, 총, 컴퓨터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어의 필요성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돌고래는 자기들 고유의 언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시킨 듯 하다. 그들의 언어는 소리를 통해 교신하는 음향 언어이다. 돌고래가  내는 소리는 음역이 대단히 넓다. 사람의 음성 언어는 주파수 1백 헤르츠에서 5천 헤르츠 사이에서 소통되지만, 돌고래의 교신은 7천 헤르츠에서 17만 헤르츠에 이르는 넓은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돌고래의 음향 언어는 아주 풍부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나자렛 베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인 존 릴리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돌고래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와 교신하기를 갈망해 온 듯하다고 한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해변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 선박들에게 다가와서는, 마치 우리에게 알려 줄 게 있다는 듯이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며, 어떤 몸짓을 하기도 하고,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돌고래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면, 이따금 역정을 내기도 하는 것 같다>고 존 릴리 박사는 말한다.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그런 행동은 동물 세계 전체를 통틀어 오직 돌고래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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