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피야! 비는 왜 올까? 물론 학교에서 배웠을 테지만 수증기가 냉각되어 물방울로 응고하고 구름이 되면 무거워서 결국 땅으로 떨어지는 거라고.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가 지금까지 열거한 세 가지 원인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덧붙여 얘기했을 수도 있다. 비의 재료의 원인 혹은 '질료 원인(質料原因)'은 대기가 차가워졌을 때 바로 거기에 수증기(구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작용하는 원인, 즉 '작용 원인(作用原因)'은 수증기를 냉각시키는 일을 뜻한다. 그리고 형상적 원인, '형상 원인(形相原因)'은 바로 땅에 떨어지는 것이 물의 본성 혹은 물의 형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네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즉 비가 내리는 것은 식물과 동물이 자라는 데 빗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비의 목적 원인인 셈이다. 네가 보듯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방울 하나에도 일종의 삶의 과제와 의도를 부여했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말할 수도 있다. 식물이 자라는 것은 습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소피야, 그 차이를 알겠니? 아리스토텔레스는 삼라 만상에 합목적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 비는 내린다. 그리고 귤과 포도가 여무는 것은 사람이 그것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생각했다.
오늘날, 현대 과학은 더 이상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양분과 습기는 사람과 동물이 살 수 있는 필요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이 귤이나 물이 갖는 의도는 아니다.
네 가지 원인설에 있어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류를 범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는 않도록 하자. 많은 사람은 신이, 사람과 동물이 살 수 있도록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사람과 동물이 살기 위해선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강에 물이 흐른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 우리는 신의 목적과 의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 결코 자연물에 내재한 의도와 목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즉 빗방울이나 강물이 우리에게 호의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2.
데카르트의 목표는 영혼에게 삶의 지배권을 주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복통이 아무리 심하다 하더라도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언제나 180도 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은 육체적 결핍으로부터 고양되어 이성적인 것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영혼은 육체로부터 전적으로 독립된 것이다. 우리의 다리는 늙고 약해지며 우리의 등은 굽고, 우리의 이는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이성이 임재하는 한, 2 더하기 2는 4이며 또한 언제까지나 4로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늙거나 약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우리의 육체는 늙는다. 데카르트에게는 이성 자체가 곧 영혼이었다. 그에 반해 욕구나 증오 같은 저급한 정념이나 기분은 육체적 기능과 밀접하게 결합된 것이며, 따라서 공간적 현실과 밀접하게 결합된 것이다.

3.
"더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성으로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신을 증명하거나 이성의 논증에 만족하면 신앙 자체를, 그리고 동시에 종교적인 간절함을 잃는다. 기독교가 진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진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지. 중세에는 이와 같은 생각을 '크레도 퀴아 압수르둠(Credo quia absurdum)'이라는 관용어로 표현했다."
"아, 뭐라구요?"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는 뜻이지. 기독교가 우리 내면의 다른 면이 아니라 이성에 호소했더라면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이해하겠군요."

4.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오랜 경험을 한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이 그 정신의 일부분을 이룰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식된 것은 수면 위에 튀어 나온 빙산의 일각과 같다는 것이지. 그 수면 아래에는, 즉 의식의 문턱 밑에는 심층 의식 또는 무의식(無意識)이 자리잡고 있다.

5.
"흐음. 그러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건 바로 '꿈의 명시적 내용'이죠. 사촌 여동생이 그 남자에게 풍선 둘을 선사했다."
"계속해 보아라."
"그리고 선생님이 우리 꿈에 나오는 소도구가 주로 전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셨죠. 그러니까 그 남자는 그 전날 낮에 시장에서 또는 신문에서 풍선 사진을 본 거죠."
"그래, 그랬을 수 있지. 단순히 '풍선'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수도 있고, 풍선과 관계 있는 그 어떤 것을 보았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꿈의 잠재 의식'이 뭐예요? 이 꿈에서 정말로 중요한게 뭐지요?"
"지금은 네가 해석가야."
"아마 그 남자는 그저 풍선 둘을 갖고 싶었나 보지요."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꿈이 욕망을 채우려 한다는 점에서는 네 말이 옳다. 그러나 성인 남자가 풍선 두 개를 열렬히 갖고 싶어하는 일은 거의 없지. 만약 그렇다면 꿈을 해석할 필요가 없을거다."
"그러면... 그렇다면 생각이 났어요. 사실은 그 남자가 사촌 여동생을 원한 거예요. 그리고 풍선 두 개는 그 여자의 가슴이구요."
"그래, 그게 가능한 해석이다. 특히 이런 욕망이 그에게는 다소 수치스런 것이기 때문에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거지."

6.
"그러면 나는 조용히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계획을 만들어 갈 수 있지. 나는 소령의 잠재 의식 속으로 완전히 깊이 잠길 것이다. 소피야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나는 거기에 머물러 있겠다."

7.
"그러니까 우리가 우주를 바라볼 때는 과거를 보는 셈이다. 우리는 이 우주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우리가 수천 광년 떨어진 별 하나를 올려다볼 때, 우리는 우주의 역사 안에서 사실상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가 여행을 하는 것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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