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렌드 예측의 위험은 트렌드를 ‘따라잡아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할 때 더욱 커진다. 예측이 빗나갔을 경우의 기회비용이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창조하고 선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위험의 문제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트렌드 예측은 수많은 기회 중 가장 유력한 기회를 골라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결과의 맞고 틀림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트렌드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에 대한 영감을 활성화하고 구체화시키는 실험적 활동이다.

2.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의 소비트렌드분석센터CTC의 방법을 중심으로, 리서치 기반 트렌드예측방법론의 한 예를 소개한다. 이 방법은 ‘연구 설계->자료수집->분석->핵심가치 도출 및 검증->키워드 도출 및 커뮤니케이션’의 5단계를 기본으로 한다.

3.
트렌드 예측도 하나의 연구이다. 연구목적을 고려하여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4.
현재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단계에서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이미 방법론이 많이 개발되어 있고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단계에서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엄청난 질적인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상상과 창조에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일반적인 매뉴얼이 없다. 상상과 창조와 같은 통합적이고 직관적인, 그리고 때로 영적인 역량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다른 상상력과 창조력을 갖는 비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노력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독자적 관점’에 대해 고민하기를 권한다. 어떤 자료를 접하더라도 당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한 줄의 문장, 한 장의 스케치를 내놓을 수 있는가? 이미 알려진 방법론을 색다르게 조합하여 사용하는 것보다, 당신만의 관점과 당신만의 키워드가 스스로 자료에 반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르게 보기’만이 창조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5.
산업분야별로 체감되는 트렌드 속도에 따라 트렌드 정보를 활용하는 요령도 달라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메가 트렌드의 관점에서 작은 변화의 의미를 평가하는 것이다. 메가 트렌드와 같은 맥락의 현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정보가 일차적으로 걸러진다. 메가 트렌드와 뭔가 다르다고 생각되는 정보만 취사하여 연구해야 한다. 미래 트렌드의 징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메가 트렌드 관점에서 정보를 검토하면서, 특이 사례만 선별하여 자사만의 트렌드 맵을 구축하는 데 활용한다.

6.
페이스 팝콘은 어떤 사업 아이디어가 미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4개 이상의 트렌드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사업 아이템은 시장의 극히 일부분만을 차지하게 되거나 혹은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유럽의 트렌드 전략 전문가인  마티아스 호르크스에 따르면, 기업은 비즈니스 과정과 관련된 5대 트렌드를 결정한 후 구체적인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트렌드연구소의 김경훈소장은 두 개 이상의 트렌드가 만나서 형성되는 트렌드 로터리에 주목하기를 권하고 있다. 트렌드 간의 상호작용이 새롭고 큰 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유들은 모두 복수의 트렌드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주목하기를 권하고 있다. 이를테면 개인화, 1인 가구 증가, 정규직 감소, 고급화 등의 다양한 사회적 트렌드가 만나 주거 문화의 극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을 살펴보자. 점차 주거의 안정성이 약화되고 주거 형태의 다양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주거단지의 기능적 전문화, 가사 노동의 상품화, 생활권 재편 등의 파급 현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개별 트렌드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주변 트렌드와 결합하여 상당한 파급력을 일으키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트렌드는 서로 의존활 수도 있고, 서로 밀어낼 수도 있다. 어떤 트렌드도 주변 현상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석될 때 그 트렌드의 향후 진행가능성에 대한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트렌드간의 상호 작용으로 눈을 돌리자.

7.
디자이너가 트렌드를 앞서간다는 것은 결국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남보다 먼저 낯선 세계로 들어가보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인구구조의 변화, 가족생활의 변화, 시간관념의 변화, 놀이의 변화, 가사노동의 변화를 낯선 눈으로 탐험해야 한다. 내 안에서 관점의 컨버전스가 일어나도록, 낯선 정보와 낯선 경험에 친숙해지자.

8.
필요할 때 마다 전문적으로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외부 업체의 컨설팅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단 그것이 중심이 된다면 곤란하다. 고급 정보는 제공받을 수 있지만, 트렌드를 보는 독자적인 시각까지 만들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후발주자로도 충분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트렌드를 선도하고 싶다면 고유한 철학과 관점을 가져야 한다. 어떤 정보를 입수하더라도 독자적인 관점과 체계에 따라 평가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는 것이 낫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어떤 정보도 아무런 터치 없이는 일회성의 그치기 때문이다. 필립스, 노키아, 애플 등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은 대부분 독자적인 트렌드•디자인 랩을 가지고 있다. 단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정보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실험을 거듭하는 것이다.

9.
소비자의 시각을 유지하라. 엔지니어가 볼 때는 A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실제 소비자의 경험을 분석해보면 A가 아닌 I가 더 결정적인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도 이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10.
그러나 시대가 변하더라도 한 사람이 무엇을 완성하기 위해 걸린 시간의 가치는 여전하며,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제품들도 그만의 이름과 성격을 알아채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11.
가까운 미래의 집 La casa prossima futura, 1999 © Philips Design

12.
필립스의 심플리시티 연구소 Simplicity lab.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디자인 연구 기관으로, 유럽, 북미, 아시아에 8개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첨단 기술과 사람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데, 세부 주제는 환경지능Ambient Intelligence, 착용하기에 적합한Wearable 제품, 열린 도구들Open Tools, 연결된 세상Connected Planet등이다.

13.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고기와 우유 같은 먹거리뿐 아니라 추위와 바람, 눈과 우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옷까지 모두 야크로부터 얻습니다. 이처럼 이제부터는 모노컬쳐, 즉 한 사회 내에서 서로 돕고 나누는 문화가 강조될 것입니다.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진정한 고급 제품,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고풍스럽고 내구성 강한 의상, 민속적인 아름다움과 자연의 느낌을 담은 옷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게 되겠죠. 옷을 구입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도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페루의 판초, 티롤식 재킷, 히말라야식 복장처럼 실제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스타일링 트렌드는 금융 경색 이후 소비자들이 열망하게 될 독창성과 개성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14.
트렌드 예측가 에델쿠르트는 마지막으로 트렌드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국내 기업과 디자이너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기업 스스로가 디자이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자신의 감수성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구요. 디자이너는 소비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매력을 느낀다면 소비자도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통계적 수치로 한정 짓지 마세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CTC
한국디자인산업연구센터,K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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