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없다면
신도 침묵을 지키고,
정의는 잠자며,
자연 과학은 정지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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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인간에게 선물을 주실 때는 항상 보자기에 싸서 주신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보자기의 이름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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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떨어지면 주식시장이 오른다.
미국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높으면 다들 이자율이 높은 미국은행에 저축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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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돈 빌린 사람)가 100만원 짜리 채권 발행을 하면 채권자(돈 빌려주는 사람)는 100만원 이하로 산다. 채권에는 돈을 언제 돌려준다는 날짜가 적혀 있다. 이자는 주기적으로(몇달에 한번 씩)주어야 한다. 보통 10% 정도의 수익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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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G 회사 위기 때 미국 정부가 850억 달러를 지원하였는데 그냥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감자(자본규모축소)'후에 지원을 하였다. 그럼으로써 미국 정부가 주주로서의 큰 위치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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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1억원 발행하면 회사 자본금이 1억원이 되고 채권을 1억원 발행하면 회사 빚이 1억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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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come back for you.
Three years. I promise.

크리스토퍼. 나도 너가 기다려진다.

District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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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저예산 SF 영화지만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게 끝이 난다.
...An impromptu goodbye party for Professor John Oldman becomes a mysterious and intense interrogation after the retiring scholar reveals to his colleagues he is an immortal who has walked the earth for 14,00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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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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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sic is all around us. All you have to do is listen.

AUGUST 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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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자노-햄머의 최근 프로젝트 역시 교환에 관한 것이다. 2005년 멕시코시티의 시케이로스 공공미술관 엘쿠보에 전시된 그의 작품 <SUBTITLED PUBLIC>은 관람객을 컴퓨터 적외선 감시시스템으로 추적하는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설치예술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 몸 위에 문자가 투사되는데, 이는 3인칭 주어 형식에 맞게 변형된 부제로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게 된다. 자기 몸에 투사된 부제를 떼어내려면 다른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데, 이때 접촉한 사람과 그 단어를 교환하게 된다. 이 작품은 감시시스템이 각각의 인종을 추적하여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에 대한 훌륭한 비판이며, 더 넓은 의미로 보면 개인을 소비자로 ‘테마화’ 혹은 ‘브랜드화’하는 기술적 진보에 의한 개인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2.
2002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의 스위스관을 위해 제작된 <HORMONIUM>에는 플렉시 유리바닥과 형광 UV관이 장착되었으며 산소 농도를 14%로 낮추어 비행기 탑승 때와 비슷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미술가 장-뤽 빌무트와 작업한 <HYDRACAFE>는 이중으로 수분을 공급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즉, 음료수를 마시는 것은 물론 환경을 습하게 하여 공공공간의 에어컨 사용개념에 정면으로 맞섰다. 지붕에는 물받이를, 바닥에는 초음파장치를 설치함으로써 습한 구역과 건조한 구역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였다. <MELATONIN ROOM>은 신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시도였다. 이 작품 역시 두 가지 인위적인 기후가 번갈아가며 재현된다. 전자파를 통해 신체의 세로토닌 생성을 억제하면 물리적•화학적으로 매우 흥분되고 고무적인 기분이 된다. 반면 자외선을 통해 세로토닌 생성을 촉진하면 나른한 느낌을 갖게 된다.

3.
이 프로젝트는 개인의 거주공간으로서 주택개념을 다른 도시에 있는 집들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확장하는 통신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REMOTEHOME>은 동시에 서로 다른 두 지역에 존재하는 하나의 아파트인데 이곳의 바닥공간은 디지털네트워크를 통해 꿰매어 합쳐져 두 도시에 나누어져 있다. <REMOTEHOME>은 생활문화의 변화와 멀리 떨어진 두 곳의 관계증진에 대응하여 반응한다. 휴대폰과 메시지 전송을 포함한 통신미디어 기술이 거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우정과 친밀감의 공유수단을 제공하고 있지만, <REMOTEHOME>은 실시간으로 매개되는 의사소통이 우리 일상생활과 우리가 사는 공간, 우리가 사용하는 가구, 그리고 우리가 아끼는 물건의 일부가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묻는다.

루시 불리반트
태영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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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로이는 오빠가 죽은 직후 [그녀가 막 여덟 살 생일을 지났을 때였다] 매우 철학적인 단계를 거치게 되었다. “나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거든. 그렇게 되면 누구라도 철학자가 되지.” 그녀의 가족들이 지금도 넌지시 이야기를 하곤 하는 그녀의 주요한 강박관념들 가운데 하나는 데카르트와 버클리의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클로이는 자기 눈을 두 손으로 가리고 가족에게 오빠가 살아 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가족이 보이는 것과 똑같이 마음속에서 오빠가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오빠가 보이는데 왜 오빠가 죽었다고 하는가? 그녀는 거기서 더 나아가 실재(實在)에 더 큰 문제를 제기했다. 클로이는 부모에게 느끼던 감정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이 눈을 감고 그들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죽일 수 있다고 [적대적인 충동의 힘과 마주한 여덟 살짜리 소녀답게 싱긋 웃으며] 말했던 것이다. 물론 이 계획은 부모에게서 심오하게 비철학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
물론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진리의 가치는 수백 년 전부터 의심을 받았다. 파스칼[1623-62, 곱사등이 얀센파, 『팡세』의 저자]은 모든 기독교인이 신 없는 무시무시한 우주와 신이 존재하는 행복한, 그러나 훨씬 더 먼 우주로 불균등하게 나누어진 세계에서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파스칼은 설사 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 작은 가능성이 주는 기쁨이 더 큰 가능성이 주는 혐오를 압도하기 때문에 신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인들은 오랫동안 철학자 노릇을 할 수가 없다. 연인들은 의심하고 캐물으려는 철학적 충동에 대립되는, 믿고 신앙을 가지려는 종교적 충동에 굴복한다. 연인들은 사랑 없이 의심을 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3.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4.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서 환경에 적응한다. 그렇다고 아메바에게 크기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자기의 규정적인 형태가 없을 뿐이다. 부조리한 사람은 나에게서 나의 부조리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사람은 나의 진지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누가 나를 수줍어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마 결국 수줍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5.
어린 시절 내내 나는 겨울방학을 고대했다. 가족이 두 주 동안 알프스로 스키를 타러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산꼭대기에 올라가 밑의 소나무로 덮인 골짜기와 위의 부서질 듯한 파란 하늘을 보면 실존적인 불안에 완전히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한 기억에는 그런 불안이 증발해버리고 없었다. 기억은 객관적인 조건들 [산꼭대기, 부서질 듯한 파란 날]로만 이루어져서, 실제 그 순간을 힘겹게 만들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불안은 내가 코를 줄줄 흘렸거나, 목이 말랐거나, 목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 해 내내 나를 위로해주었던 미래의 가능성 하나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슬로프 바닥에 이르자마자 나는 산을 돌아보며 완벽한 활주였다고 혼자 되뇌었다. 스키를 탔던 방학은 [일반적으로 내 삶의 많은 부분도] 그렇게 흘러갔다. 아침의 기대, 현실에서의 불안, 저녁의 유쾌한 기억.

6.
“인간의 모든 불행의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파스칼의 말이다. 맥없이 사회적 영역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서 이것을 성취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프루스트는 무하마드 2세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하렘의 한 아내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즉시 그녀를 죽이게 했다. 다른 사람에게 영적으로 종속되어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무하마드 2세를 흉내내기는커녕, 오래 전에 자족성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렸다. 나는 내 방에서 나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른 인간에게 기초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7.
“문제를 말하면 진짜로 문제가 생겨.” 클로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8.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 속담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시간표와 다이어리의 엄격한 요구에 이끌려 가지만, 마음의 자리인 영혼은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함 노스탤지어에 젖어서 느릿느릿 뒤따라온다. 만일 모든 연애가 낙타에게 짐을 더 얹는 것이라면, 사랑의 짐의 의미에 따라서 영혼의 속도는 더 느려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의 낙타가 마침내 클로이의 기억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떨쳐버렸을 때, 낙타는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노스탤지어 :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9.
지혜는 우리에게 평정과 내적 평화를 목표로 삼으라고 말한다. 불안, 두려움, 우상숭배, 해로운 정열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지혜는 우리에게 우리의 첫 충동이 꼭 진실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이성을 훈련시켜서 무익한 요구와 진정한 요구를 분리하지 않으면 욕심 때문에 길을 잃을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지혜는 우리에게 상상력을 통제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현실을 왜곡하여 산을 흙 둔덕으로, 개구리를 공주로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지혜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제어하라고, 그래서 우리에게 해를 주는 것은 두려워하되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말라고 가르친다. 지혜는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자체라고 가르친다.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정영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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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성된 것은 단순한 성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열의와 심혈을 기울였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2.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없어요.”
이 말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그 어떤 것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 중의 하나다. 즉,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세계가 좋아서 견딜 수 없을 때에는 자신이 속해 있는 분야와 관련된 모든 것이 궁금해지고 나름대로의 걱정도 하게 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면 인테리어업계의 역사를, 건축가라면 건축업계의 역사를 풀어헤쳐 보고 싶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다.

3.
오사카에서 일을 하다 문득 생각했다. 녹이 슨 테이블 다리를 철솔로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나는 지금 낡은 것을 새것에 가깝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낡은 것을 새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것만으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하얀 벽이 더러워졌다고 하자. 이것을 다시 하얗게 만들고 싶을 때, 세제 등을 이용하여 ‘얼룩을 닦는다’는 생각과, ‘하얀 페인트를 사용하여 덧칠을 한다’는 생각이 있다. ‘새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하나는 ‘새것’, 또 하나는 ‘낡지 않은 것’. 열심히 녹을 벗겨 내던 도중에 ‘너무 심하게 벗겨 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D&DEPARTMENT의 고객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아마도 새것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고풍스러우면서 깨끗한 것이 아닐까.

4.
현명한 상인은 경쟁 상대를 만든다.

5.
‘위기일발’이라는 인기 게임이 있다. 통에 칼을 찔러 해적이 튀어나오면 패배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위기일발 게임이 있지요? 통에 칼을 찔러서 검은 수염의 해적이 튀어나오면 패배하는 게임말입니다. 하지만 해적이 튀어나오는 것을 승리로 정하면 패배가 아닌 승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규칙을 그렇게 바꾸면 간단한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38년 동안, 나는 줄곧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검은 수염을 가진 해적이 튀어나오는 경험도 몇 번이나 있었고. 사실 이 게임에 정답은 없다. 게임설명서에 ‘승패’가 기재되어 있다면 몰라도. 38년 동안 칼을 찌르면서 ‘위험해! 지겠어!’라는 생각에 초조해했던 것이 어쩌면 ‘됐어. 이길지도 몰라!’라고 생각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견해만 바꾸면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는 상황은 인생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6.
‘꿈이란 평범한 노력을 통해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물론 돈으로도 살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몸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을 시켜 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문제부터 여행과 같은 큰 문제까지,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탁하기 어려운 그런 문제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이런 서비스는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받는 쪽은 상대방이 아무리 자원봉사자라고 해도 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사실은 저 곳에 가보고 싶지만 솔직하게 요구하기 어렵다. 그런 경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돈을 지불해도 좋다. 내가 가고 싶은 장소에 가고 싶을 때에 마음껏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켜 줄 사람이 있다. 꿈을 돈으로 실현시켜 주는, 바로 그 사람이다.
사실,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도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을 내걸 경우, 받는 사람의 입장이 편할 리 없기 때문에 굳이 돈을 받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꿈’은 ‘평범하게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7.
엄청난 기세로 가속화되는 느낌. 그것은 감동이었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도 재미있다. 금발의 청년, 귀여운 느낌의 여성, 전형적인 아주머니, 그리고 넥타이를 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아저씨. 물론 그중에는 음악가처럼 보이는 멋진 신사도 있었다. 그 ‘소리’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일까. 물론 일본필하모니교향악단이라는 ‘회사’로부터 급료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각자 예를 들면, 다른 장소에서 음악 교실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음악과 관계가 없는 다른 일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일본필하모니교향악단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생활이 보장될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문득 내가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회사가 떠올랐다. 우리 회사가 이 일본필하모니교향악단이라는 집합체라면 사원들 각자는 여기에 모여 참가하는 데에 의의와 긍지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모이지 않는 날은 각자 나름대로 연습하는 한편 다른 일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여기에 모이는 이유는 완전한 ‘공연’을 위한 것이고 연습을 하기 위해 여기 모이기 전에도 각자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할 것이다. 충분한 연습을 하고 ‘연습’을 위해 모이고 ‘공연’이라는 무대를 맞이 한다.

8.
이런 체험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사지숍의 경우 ‘다섯 명 한정’을 내세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기본적인 관찰을 하고 ‘예약 취소가 발생했다’며 접수를 하는 것이 아닌가. 또 민박집의 경우에는 일부러 끝나지 않는 회원 등록을 만들어 놓고 결과적으로 직접 메일을 주고받게 하여 예약을 받는 것이 아닌가.
언뜻, 일방적으로 거절을 당한 것 같지만 결과가 이런 형식으로 끝난다면 기분 나쁜 일이 아니다. 이쪽이 ‘단순한 고객’으로서 교섭이나 예약, 의뢰를 한다. 이 ‘연락한다’는 최초의 접점은 그 이후의 인상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부러 거절을 하고 시간을 둔 다음에 연락을 한다거나 일단 화가 나도록 유도한 다음에 순조로운 절차를 통하여 그 불만을 해소해 줌과 동시에 감동과 만족을 안겨 주는 방법.
하루에 다섯 명. 완전예약제. 말은 그렇지만 사실은 50명을 받는지 100명을 받는지 알 수 없다. 단, 예약을 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설사 40명째에 해당한다고 해도 결국 ‘귀중한 다섯 명 안에 해당하는 사람’이 된다. 더구나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이유에서 그날 마사지를 받게 된다면 자기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달려갈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9.
옛날에는 먹을 수 없던 음식이 어느 틈에 기호 식품으로 변하거나, 어린 시절 ‘맥주는 쓰기만 한 음료’라고만 생각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성인이 되면 맥주의 시원한 맛을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간도 변하고 유행도 변하고 우리들 자신도 변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10.
직원들과 점장은 매년 사장 나카오카가 화를 내지 않도록 ‘약간 다른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표현’하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언제였던가. 그 해 크리스마스에 도쿄 본점의 사이토점장은 약 200개의 양초를 입구에 밝혔다. 실제로 해 보면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양초들은 어떤 트리나 네온보다 훨씬 더 멋져 보였다.

11.
예전에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내게 일을 맡기고 싶으면 내가 있는 장소로 오라.”고 말하고 취재에 응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것은 ‘맡기고 싶은 일’이 ‘잡무로서의 일’인지,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따라 탄생하는 작품’인지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후자에 해당한다면 고객은 당연히 그 디자이너에 관하여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또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창작 환경을 살펴보고 판단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은 오만이 아니라 일종의 프리젠테이션으로서 판단 재료로 삼아달라는 메시지다.

12.
20대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다. 당시에는 오직 주변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고 보면 30대는 어쩌면 ‘주변과 자신’ 40대는 ‘자신과 사회’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50대는 ‘사회’, 60대는 ‘자신’이 아닐까.

나카오카 겐메이
이정환 옮김
,
1.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북쪽 지방에 어떤 가족이 멋진 판잣집에서 살고 있었다. 집의 가운데에는 굴뚝 달린 난로가 있어서, 수수한 판자로 둘러싸인 벽에 온기를 느끼게 했다. 겨울에 가족들은 난로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곳은 이 짓에서 열과 빛의 유일한 원천이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했고, 부모들은 그날 소식을 교환했으며, 할머니는 자수를 놓았다. 난롯가는 대가족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 후 에너지를 공급하는 파이프-전선과 중앙난방 배관 등-가 설치 되었다. 가족들은 집안 어디서나 따뜻함과 빛을 얻을 수 있었다. 단지 명절이나 축제 때의 향수 어린 오락거리용 말고는 난로에 불을 붙여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들은 자기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숙제를 하거나 음악을 들었다. 부모들은 서로 다른 교대 근무시간에 일하기 시작했으며, 냉장고 문에 서로 퉁명스러운 메모를 붙여놓았다. 할머니는 짜증나고 지루해져서, 곧 에어컨 시설이 갖추어진 피닉스(Phoenix) 근처의 양로원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당신과 비슷하게 가족들에게서 소외된 다른 동료들과 빙고놀이를 했다. 난로 주변은 더 이상 사회적 결속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2.
Form fetches function.
이런 식으로 소프트웨어가 어디든지 자유롭게 움직이고, 여기에 접속만 하면 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때, 물건의 기능은 예전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형태만을 봐서는 그 물건의 기능을 짐작할 수 없게 된다. 이제 벽에 붙어 있는 디스플레이 스크린은 우리의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서 시계도 되고, 텔레비전이나 증권 시세표도 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초상으로 둔갑할 수도 있고, 때론 어린아이를 돌보는 모니터로 그 역할을 계속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손바닥 크기의 포켓용 컴퓨터 장치 하나가 휴대전화, 호출기,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텔레비전 리모콘의 역할을 동시에 할 것이다. 간단한 플라스틱 사각형 카드는 신용카드, 디지털 현금으로 채운 지갑, 현관열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3.
한편, 빠른 전자배달에 덧붙여 시간대 차이를 함께 활용한다면 효율적인 새로운 형태의 24시간 교대작업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 예를 들어 국제적인 건축 및 엔지니어링 설계기업은 약 8시간의 시간대 차이가 나는 도시들에다 사무실들을 설치하고는 캐드 파일을 이 사무실에서 저 사무실로 전자적으로 전달하면서 전세계로 계속 빙빙 돌리게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은 때로는 특정 지역에 혜택이 가도록 조직될 수도 있다. 런던의 소호(Soho) 지역-영화 및 비디오의 가공생산 기술인력들의 온실-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할리우드와 반나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행운의 입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호에서는 캘리포니아에서 그날 촬영이 끝난 필름들을 전자상으로 배달받아서, 런던의 정상적 근무시간 동안에 그것을 가공한 후, 캘리포니아에서 다음날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되돌려 보낼 수가 있다.

4.
짧은 시간 동안만 웹을 돌아다녀보아도,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원격 로봇 장난감과 기술적 설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야후에서는 이것을 ‘네트와 연결된 흥미 잇는 장치들( Interesting Devices Connected to the Net)’로 분류한다.] 이 단락을 쓰면서, 나는 여러분들이 다음과 같은 것을 할 수 있는-또는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혹은 한때 할 수 있었던-사이트들을 발견했다. 그 사이트들에는 모래가 채워진 유리상자 속에 묻힌 물건을 파내는 것, 다양한 종류의 실험실 장비들을 제어하는 것, 여러 장소에서 비디오 카메라들을 작동시키고 비추도록 하는 것, 독일에 있는 모형 기차를 작동시키고 이것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 멀리 떨어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 전구들을 켜는 것, 여러 개의 자동 망원경들을 작동시키는 것, 서호주 대학(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에 있는 기계 팔을 가지고 주위의 블록을 이동시키는 것, 진짜 물감과 붓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 심지어 멀리서 토스트를 굽는 것까지 있다.

5.
비슷한 예로, 차고나 주차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주차하고 있는 당신의 자동차는 쓸모없이 묶여 있는 자원인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교하게 전자적으로 관리되는 자동차임대 공급서비스의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나 자동차가 필요할 때,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 차종-어떤 때는 미니밴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두 좌석만 있는 스포츠카가 될 수도 있다-을 제공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전체 차량을 한꺼번에 더 슬기롭게 관리하는 것이 각각의 개인 소유 자동차를 개별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많을 것이다.

by William J. Mitchell
강현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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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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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다면 국내 디자인산업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혹시 청담동 패션거리와 용산 전자상가, 프라다와 무지, 백화점 명품매장과 대형 할인점 사이 어딘가에서 엉거주춤하게 헤매다가 결국 공공디자인사업을 발주하는 행정기관들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 영세 하청업체로 전락한 중소기업들에 대한 소문을 뒤로 한 채, 극소수 대기업의 성공사례를 자신의 것인 양 우쭐해 하며 헛된 자존심으로 대륙의 하이얼을 비웃고 스티브 잡스의 맥 월드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
드로흐 길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드로흐 초기 멤버의 일부가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Design Academy Eindhoven)을 근거지로 삼아 드로흐 미니미 또는 네덜란드풍 디자인 자영업자들을 육성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학교의 디자인 교육 방식이 개념의 생산 못지않게 그것의 ‘실행’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이 학교가 배출하려는 디자이너의 모습은 소수 권력자에 봉사하는 중세의 수공업 장인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의 시도는 비록 디자이너의 지위와 역할의 시대적인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퇴행’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 이 학교는 다른 유명 디자인학교들과 분명하게 구분된다.
대개의 디자인 학교들은 디자이너를 기업조직의 일원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실행’을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일로 방관하는 경향이 있으며, ‘양산’을 디자이너의 유일한 덕목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를 가능케 하는 기업의 존재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학교의 교육 방향은 전통적인 디자인 커리큘럼에서 벗어난 ‘진보’로 이해될 수도 있다.

3.
아이디오의 차업자 빌 모그리지(Bill moggridge)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동아시아의 고객의 경우, 호경기에는 외부용역을 많이 주기 때문에 우리가 일을 할 기회가 많지만, 불경기에는 외부용역을 끊고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자체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반대로 서구의 고객의 경우, 호경기에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자체적으로 일을 처리하지만, 불경기에는 외부용역을 많이 준다. 왜냐하면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을 대부분 해고한 이후이기 때문이다.”

4.
디자인이 완전한 관람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 작품 본연의 기능조차 심미적 대상으로 전환된다. 그렇게 디자인 아트는 보다 근본적인 ‘탈기능’의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그것은 앉을 수 없는 의자라는 뜻이 아니라,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앉지 않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디자인 아트는 디자인을 감상의 대상으로 전환하며, ‘시각’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5.
2006년 런던의 어느 날 아침. 트라팔가 광장에 500개의 의자들이 등장했다. 이 의자들은 발포 폴리스틸렌 그룹의 협찬으로 톰 딕슨이 만들어낸 것들로,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누구나 그의 의자를 공짜로 집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총 500개의 의자는 정확히 7분 만에 모두 동이 났다. 그리고 이듬해, 뉴욕 모스(Moss) 갤러리에서는 이 공짜 의자의 구리 도금판 ‘CU29’ 8점이, 차례차례 3만 달러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갔다. 무료 의자와 한정판 의자를 가르는 경계는 순도 99퍼센트의 얇은 구리 피막에 불과했다. 디자인 민주주의와 디자인 아트, 혹은 대중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가르는 경계란 이처럼 얇았던 것이다.

6.
1924년 10월 1일 늦은 오후,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의 샹젤리제에서 다소 반(反)기술적이고 벤야민적인 방식으로 텅 빈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6시가 되자, 갑자기 사방에서 자동차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와 이 겁먹은 스위스 출신 산책자에게 돌진했다. 그는 가까스로 가로수가 우거진 보도로 몸을 피한 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비로소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자동차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도시계획의 토대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나는 푸조, 시트로엥, 부아쟁(당대의 유명한 자동차 제조업체. 푸조와 시트로엥은 합병하여 여전히 영업 중이다)의 최고 관리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가 대도시를 살해했으니 이제 자동차가 대도시를 구해야 합니다. 나는 기계시대에 의해 돌이킬 수 없이 변모한 삶의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도시 구조를 창조하려 합니다. 신사 여러분, 자동차 기반의 파리 재개발 계획을 후원하지 않겠습니까?”

7.
흔히 헤겔의 말이라고 인용되는데, 모든 거대한 세계-역사적 사실은 적어도 두 번 반복된다. 이에 대한 칼 마르크스의 부연 역시 유명하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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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된 디자인계의 금언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화병을 디자인하라고 말할 때와 꽃을 담을 물건을 만들라고 할 때의 결과물은 달라진다. 작은 작업에만 집중해버리면 화병만 줄곧 디자인할 뿐 벽에 걸 수 있는 작은 장식용 정원은 절대로 생각해내지 못한다.

2.
스타벅스 체인점은 고객들이 주문하는 공간과 주문한 음료수를 받는 공간을 구분하고, 사람들이 음료수에 크림이나 설탕을 넣을 공간을 다시 분리함으로써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했다. 이를 일반적인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어수선한 카운터와 비교해보자.

3.
언젠가는 음성 메시지가 도착한 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온도가 내려가서 차가워지는 기능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4.
복잡한 도시에 살면서 모든 사람이 차를 타고 다니기보다는 차를 공유하거나 각자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면 어떨까? 이 질문이 집카Zipcar와 같은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탄생시켰다. 사용자들은 이 서비스를 이용해 일정 시간 동안 차를 사용하고 이를 다시 공용 주차장에 돌려주어 다른 사람들이 그 차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5.
나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지포 라이터를 갖고 있다. 별다른 사고가 없는 한 지포 라이터는 언제나 같을 것이다. 그것은 실체가 있으므로 쉽게 만지고, 사용하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 특히 변화가 잦은 디지털 서비스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사실 고객은 서비스를 쉽게 바꿀 수 있다. 만약 이베이보다 나은 경매 서비스가 나온다면, 사용자들은 그리로 건너갈 것이다. 설사 우리 할아버지가 이베이를 쓰셨대도, 내가 더 나은 서비스로 옮겨가는 걸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지포 라이터를 더 좋은 라이터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라이터에 애착이 있다. 확실히 그건 감정적이지만, 인간은 원래 감정적 존재이고 항상 논리적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요점은 사람들은 고유한 생물학적 배선 덕에 무형의 서비스보다는 사물에 더 감정적 애착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6.
다가올 10년 안에, 인터넷은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나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오브젝트와 건물들로 옮겨갈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센서, 무선식별RFID 태그가 일상의 물건에 내장되고 네트웍으로 연결되어 부르스 스털링이 “사물들의 인터넷”이라 부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전자장치가 우리 삶을 바꿔놓았듯이, 더는 인터넷을 특정한 목적지나 장소로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Daniel Saffer
이수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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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잔인한 영화이긴 하지만
단순한 오락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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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imperative to develop your own vocabulary of your own language - a language that attempts to be as objective as possible, knowing very well that even objectivity is subjective.
I love systems and despise happenstance. I love ambiguity because, for me, ambiguity means plurality of meanings. I love contradiction because it keeps things moving, preventing them from assuming a frozen meaning, or becoming a monument to immobility.
As much as I love things in flux, I love them within a frame of reference - a consistent reassurance that at least and at last I am the one responsible for every detail.
 
And that is why I love Design.

Massimo Vign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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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따라서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고 인지하고 소통하고 행위하는 것은 누군가가 디자인한 인터페이스’들’을 통해서라고 말이다.

2.
패퍼트는 특정 언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린이가 수학의 언어를 습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컴퓨터가 어린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환경이 갖춰진다면 어떨까?
패퍼트는 이런 질문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교육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가르침에 따라, 어린이의 자율적인 학습 활동을 돕는 기계 친구로 컴퓨터 환경을 구성하려 했다. 패퍼트가 ‘수학나라’로 명명한 이 환경에서 어린이와 컴퓨터 사이에서 교감의 가교 역할을 하는 핵심 요소는, ‘터틀turtle’이라는 그림 그리는 로봇이었다. 어린이들은 터틀을 처음 대하고 난 뒤 얼마 동안은 그저 원격 조정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간단한 수학 공식을 활용해 LOGO 언어로 프로그램을 짜서 터틀에게 도형 그림을 그리도록 지시했다. 어린이들은 터틀을 매개로 컴퓨터와의 정서적 관계를 강화하면서, 수학의 논리와도 친숙해질 수 있었다.

3.
이런 논의를 종합해보면, 투시도법에 기원한 디자인 교육의 역사적 맥락을 좀 더 정교하게 고찰함과 동시에 다양한 모델링 인터페이스와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 사고와 조형 논리의 개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컴퓨터의 모델링 인터페이스가 투시도법 기반의 그림 그리기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섣불리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이 두 가지 모델링 인터페이스의 관계를 배타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한, 이에 대한 논의는 양자택일의 소모적인 논쟁으로 귀결될 뿐이다. 다만 모델링 인터페이스가 다양화, 복수화됨에 따라 그것과 관계 맺는 디자인 사고나 조형 논리 역시 다양화, 복수화될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4.
스크린은 그 광물성 재료의 이물감 때문에 텔레비전 본체의 조형 질서에 통합되기 어려운 암초다. 하지만 역으로 스크린에게 있어 본체의 외형은 시청자가 몰입의 문턱을 넘어서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면 본체의 외형에게 스크린은 결핍이며, 스크린에게 본체의 외형은 잉여인 것이다. 자누소와 자퍼는 이 결핍과 잉여의 비대칭적 관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가지 타협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스크린이 수다를 떨 때와 침묵할 때, 즉 온•오프의 두 가지 경우를 분리해 각각에 맞게 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텔레비전은 전자의 경우에는 순수한 스크린으로, 후자의 경우에는 블랙박스의 미니멀한 오브제로 표현되었다. 브리온베가의 텔레비전은 ‘지킬 오브제’와 ‘하이드 스크린’이라는 1물 2역을 떠맡은 셈이었다. 시각적 상징화보다는 상화의 연출에 주목하는 것이 자누소와 자퍼가 취한 접근법의 요체였다.

5.
<비디오드롬Videodrome>

6.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앰비언트 테크놀로지를 콘셉트의 밑거름으로 삼은 필립스사의 최근 디자인 프로젝트 <새로운 일상The New Everyday>은 ‘사라짐의 미학’을 생존의 핵심 전략으로 삼는다. 필립스사의 디자인 연구소 소장인 스테파노 마르자노Stefano Marzano는 이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몇 년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미래의 가정이 오늘날의 가정보다 과거의 가정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 예측한다. 오늘날 가정을 채우고 있는 블랙박스들은 사라질 것이며, 의자, 탁자, 침대처럼 좀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사물들이 무대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물들은 태곳적부터 특정한 형태로 우리와 함께 생활해왔으며, 그 기능은 나름의 본질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그 사물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블랙박스의 사물들이 수행하는 기능(엔터테인먼트,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최종적 형태는 아직 성취되지 못했다. 그것들은 좀 더 중요한 사물들, 즉 벽, 책장, 의자, 접시와 같은 사물들과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다.
이런 입장은 <새로운 일상>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전제품들은 박스 형태를 벗어던진 후, 눈에 거슬리지 않게 흔적도 없이 벽면으로 사라지거나 가구 오브제의 모양새를 흉내 내며 방 모퉁이에 조용히 서 있다. 즉 “보이지 않는 컴퓨터”라는 도널드 노먼의 시나리오와 유사한 노선을 밟으며, 가까운 미래에는 가전제품의 기존 모습이 가정의 풍경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7.
그렇다면 진도구란 무엇인가? <101가지 쓸모없는 일본의 발명품: 진도구의 예술>은 다음과 같이 진도구의 십계명을 정의한다.
1. 진도구는 실제적인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니다.
2. 진도구는 분명히 존재한다.
3. 모든 진도구는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이다.
4. 진도구는 일상생활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5. 진도구는 판매를 위한 상품이 아니다.
6. 진도구 제작에 있어 유머만이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7. 진도구는 선전하거나 선동하지 않는다.
8. 진도구는 결코 금기가 아니다.
9. 진도구는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10. 진도구는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
위의 십계명이 암시하듯이 진도구는 순수외관의 정반대편에서 ‘순수기능’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여기서 순수기능이란 실제적인 사용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잉여의 기능을 의미한다. 코를 풀기 쉽도록 머리 위에 걸고 다닐 수 있는 휴지 걸이, 막 끓인 라면을 식혀가면서 먹기 위해 선풍기를 장착한 젓가락, 안전한 보행을 위해 언제든지 차도에 깔 수 있는 두루마리식 횡단보도처럼 기발하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들이 자주 언급되는 진도구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것들이 암시하듯이, 진도구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복잡하고 특수한 방식으로 필요와 기능의 인간중심적인 방정식을 내파해버린다.

8.
영국의 디자인 역사가 페니 스파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독일은 과학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팔며, 이탈리아는 예술의 이름으로, 북구는 공예품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팔고, 미국은 비즈니스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판다.”

9.
흥미로운 것은 이런 고난의 행보 덕분인지, 이 세대의 디자이너들 중 일부는 지난 세기에 찾아보기 힘들었던, 차라리 현대 미술과 호환될 법한 기이한 실험들을 진행하면서 자기 비평적인 태도로 디자인의 20세기적 신화를 해체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혹시 지속적인 위기가 이들에게 미적 실험성과 조우할 수 있는 자율성의 공간을 일시적으로나마 개방해준 것일까?
물론 20세기의 디자인 역사를 훑어보면, 디자인이 예술과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시도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실험적 시도는 이전과는 무척 다르다. 이전의 시도는 디자인 산업의 호황에 동승해, 상당 부분 낭만주의 예술관에 의지하면서 디자이너 자신의 자기표현 수단으로서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여유롭게 탐색하는 것이었다. 반면, 최근의 시도들은 디자인 산업의 완연한 하향세에 따른 무기력증의 발현으로서, 디자인 산업의 구조 변동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확산이 빚어낸 과도기의 틈새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 일상의 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기이한 인터페이스들의 복마전을 펼쳐 보인다.

10.
이들과는 달리 약간 모호한 정치적 태도를 견지하는 피터 앨런과 칼라 머레이는 <스킨테틱> 프로젝트를 통해 2020년의 미래에 거대 기업의 브랜드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마스터 카드, 나이키, 샤넬을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이 기업의 브랜드 전략이 유전공학이나 성형외과 기술과 결합될 가능성을 예측한다. 이들이 제안하는 마스터 카드와 나이키의 디자인 콘셉트는 1990년대의 사이버펑크 소설들이 묘사했던 미래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플라스틱 신용카드를 디지털 DNA로 대체해 손톱에 이식한다거나, 충격 완화를 위한 공기 펌프를 발바닥에 이식한다는 식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런 질문도 가능해 보인다. 유명 여배우들이 들고 다니는 명품 핸드백을 신용카드로 살 수 있다면, 그 여배우의 코를 구입할 수는 없는 것일까? 더 나아가, 성형시술을 받는 김에 샤넬의 로고 패턴을 피부 조직에 이식받고 ‘명품’의 전신을 렌더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박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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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행적이라는 것은, 말이나 말 행위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려는 바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효과를 통해 생산된다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A는 여자다”,”B는 흑인이다”라는 진술을 그 A와 B가 여자, 흑인에 대응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진술을 통해 여자, 흑인이란 정체성을 ‘선언’하고 ‘공표’하며 ‘제정’한다는 것 등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언어학에서 흔히 수행사the performative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며 드는 예는 “이제부터 당신들은 부부임을 선언합니다”라든가 “지금부터 이 배를 한바다호라 명명합니다”같은 것이다. 물론 이 말들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효과를 생산한다. 다하고 선언하며 강요한다. 그것은 말을 지시 관계 속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효과라는 측면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2.
포스터는 소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세 가지 답변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에 관한 각각의 답을 내놓는다. 하나는 “잘 모르겠으나 소설은 그저 소설이죠”라고 말하는 농부나 버스 운전수의 답변. 그리고 두 번째 답변은 “나는 얘기를 좋아하지. 소설이란 얘기 아닌가. 예술 따윈 아무래도 좋으니 내겐, 아주 나쁜 취미지만, 얘기면 족하오. 얘기는 얘기다워야 하니까. 마누라도 똑같아요”라는 골프장에나 다니는 사람의 말. 마지막 세 번째는 포스터 자신의 답변인 “그렇지요. 암, 그렇지요. 소설은 얘기를 해주죠”라는 말.
세 가지 모두 소설을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각자 다른 지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첫 번째 답변을 내놓는 사람은 제가 그간 읽고 들은 소설을 두고 그저 소설은 이야기이지 않겠느냐고 겸손히 말한다. 두 번째 답변은 물론 그와 딴판이다. 소설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게 다라고 확언한다. 세 번째는 물론 소설은 이야기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소설이 이야기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떼어내기 어려운 어떤 잉여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포스터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지만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싫을 뿐 아니라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디자인에 빗대어 보는 게 그렇게 억지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첫 번째 부류를 디자인을 소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제품의 쓰임새와 겉모습을 들여다보면 디자인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두 번째 부류는 흔히 ‘트렌드세터’나 ‘얼리어답터’로 자처하는 중간 계급 상층에 속한 사람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은 장황하고 요란스럽게, 누가 언제 만들었으며 어떤 유파와 경향에서 나온 작품인지 역설할 것이다. 좀 더 뻔뻔하다면 그것이 얼마나 비싼지를 덧붙이는 것 역시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면 디자인은 디자인이지만 언제나 그 이상의 것이 또한 그 안에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글쎄요, 그런 게 다 디자인인 것은 맞지요”라고 말끝을 흐리는 사람들. 나는 디자인을 생각할 때 바로 그 세 번째 편에 서고 싶다. 디자이너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소비자이자 학자로서 말이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것은 포스터가 말했다고 김윤식이 전하는 그것, “멜로디라든가 진리의 인식 같은 것”에 해당되는 무엇, 그 잉여를 기대하고 예상하는 자세이자 시점이다.

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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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 아름다움은 장식적으로 꾸미려는 뉘앙스나 표현 대신 물건의 기능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그런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자기 표현도 배제되죠. 기능에만 집중함으로써 물건과 그 용도에 결부시킬 수 있는 그 어떤 감정도 제거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물건은 그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죠.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진지하게 일에 몰두하고 자신의 특정 역할에 집중하다 보면, 보이지 않지만 끈끈한 관계가 다져져서 존경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사물도 마찬가지예요. 기능에 집중하고 감정을 자제하면, 사물과의 관계는 더욱 흥미로워지고, 사물에 대해 친근감이 형성됩니다. 어찌 보면, 이는 특정 물건이 겸손하고 자기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기능 면에서 완전무결한 경우죠. 서로가 아첨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인 관계가 일본 미의식의 기반입니다. 한편 기능에 초점을 맞추면 물건을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손가락으로 잡도록 고무 손잡이에 네 개의 홈이 파인 망치보다, 단순하고 사용하기 쉬운 원형 나무 손잡이가 달린 망치가 나중에는 손에 더 편해집니다. 사용하다 보면 손잡이 형태가 차츰 변하니까요. 이런 망치는 상당히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어떤 종류의 못이든 망치질을 할 수 있어요. 망치와 마찬가지로, 생긴 모양만 가지고 “보세요, 전 사용하기 쉬워요.”라고 광고하지 않는 제품들이 있어요. 슈퍼노멀은 바로 그 단순하고 간결한 상징적인 망치를 가리킵니다.

후카사와 나오토, 재스퍼 모리슨
박영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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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어떤 식품 광고들은 맛을 홍보하기보다 과학적인 이미지로 믿음을 유도한다. 때로는 원소기호의 나열로, 때로는 실험실의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의 모습을 오버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침대회사의 광고를 들어온 어린이가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학교 시험에서 침대를 답으로 골랐다는 일화는 과학의 이미지가 얼마나 우리 삶의 공간에서 추앙되고 있는지에 대한 우울하지만 명확한 사례일 수 있다.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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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릴리퍼트에 있는 작은 사람들의 살결이 이 세상에서 가장 희고 아름답게 보였던 일이 생각난다. 나와 친근하게 지내던 릴리퍼트의 학자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을 때, 그는 내가 자신을 손에 들어서 가까이 바라보는 것보다는 멀리 떨어진 땅에서 쳐다볼 때의 내 얼굴이 훨씬 희고 부드럽게 보인다고 말했다. 나를 가까이서 처음 보았을 때 나의 피부는 아주 소름끼치는 모습이었다고 하였다. 나의 피부에는 커다란 구멍들이 여러 개 나 있었으며, 수염은 산돼지의 털보다도 열 배나 거칠었다. 피부색 역시 보기 싫은 몇 개의 색깔로 합쳐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피부는 영국의 남자들 가운데에서도 고운 편이었으며,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별로 타지 않았었다.
릴리퍼트의 궁중에서 일하는 그 학자는, 어떤 귀부인은 주근깨가 많고, 어떤 부인은 입이 너무 크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떤 부인은 코가 너무 크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러한 것을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2.
하늘을 나는 섬의 사람들은 너무나 강한 사색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발성기관이나 청각기관을 외부의 자극으로 깨우지 않으면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클라임놀’을 시종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클라임놀’은 머리를 두드리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머리를 두드리는 시종이 없을 경우에는 외출하거나 방문을 하지 않았다.
시종이 하는 일은 둘이나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바람 주머니로 말하려는 사람의 입과 그 말을 들을 사람의 오른쪽 귀를 부드럽게 두드리는 것이었다. 두드려 주는 시종들은 주인이 걸을 경우에도 부지런히 따라다니면서 가끔씩 주인의 눈을 부드럽게 두드려 주었다.
주인은 언제나 사색에 잠겨 있기 때문에 절벽이 나타나면 떨어지고, 기둥마다 머리를 부딪히며, 거리에서 다른 사람을 밀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밀려서 하수구로 떨어지는 위험에 아무런 대책도 가질 수 없었다.

3.
나는 국민들을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가장 편리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한 교수는 자신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세금을 거두는 가장 정당한 방법은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행위에 세금을 붙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에 의해 적절한 방법으로 세율을 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교수의 견해는 전적으로 달랐다.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되는 육체나 정신의 질에 따라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뛰어난 정도에 따라 세율을 적당히 결정하며, 그 결정권은 사람의 양심에 맡긴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세금은 이성들의 사람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내어야 한다. 평가는 그들이 받는 사랑의 수와 성질에 따라 그 기준이 정해지며, 사랑의 수나 성질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보증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지, 용기, 친절과 같은 성품도 많은 세금을 내게 되어 있으며,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성품의 양을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명예, 정의, 지혜, 학식과 같은 것은 절대로 세금을 매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아주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이웃사람의 그러한 성질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에게서도 그 성질들을 값비싸게 평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들은 용모의 아름다움과 옷을 입는 미적 감각에 따라 세금을 매기도록 되어있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자신의 평가에 따라 스스로 세율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절개, 정조, 기품, 성격 같은 것에는 세금을 매기지 못한다. 여자들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결코 세금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도망을 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죽지 않는 스트럴드블럭을 언제나 만나볼 수 있는 럭낵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스트럴드블럭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30세까지는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행동하며, 그 이후에는 점차 우울해지고 정기가 쇠퇴하며, 60세가 넘으면서 더욱 침울해진다고 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정도의 스트럴드블럭만이 같은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찰은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스트럴드블럭이 60세에(이 나이는 럭낵에서 삶의 한계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르렀을 때, 그들은 노망을 부리거나 조금씩 어리석어지며 죽지 않음으로 인하여 생기게 되는 무서운 절망을 갖게 된다. 그들은 고집이 세고, 불평을 많이 하고, 욕심이 많고, 언제나 침울하고, 허영심이 많고, 수다스럽고,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르며, 손자보다 아랫대의 후손들에게는 어떠한 애정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시기와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주로 질투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의 행동과 나이 든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젊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모든 쾌락으로부터 자신들이 제외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장례식을 볼 때마다 자신들이 갈 수 없는 영원한 안식처로 죽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매우 한탄하였다. 그들은 젊은 시절이나 중년에 배우고 관찰한 것 이외에는 잘 기억하지 못하며, 기억한다고 할지라도 매우 불완전하다. 어떤 사건에 대한 확실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억력에 의존하느니 차라리 일반적인 전설에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스트럴드블럭 가운데서 그래도 나은 사람은 노망이 들어서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동정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노망이 든 사람에게는 다른 스트럴드블럭이 가지고 있는 나쁜 성품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트럴드블럭이 럭낵의 사람들과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법률에 의해 그들은 60세가 되었을 경우 헤어지게 된다. 이것은 상당히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스트럴드블럭으로 태어나 영원히 살도록 벌을 받은 사람들에게 아내의 짐마저 지운다는 것은 지나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럴드블럭이 80세에 이르게 되면 법적으로 죽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의 상속자는 즉시 스트럴드블럭의 재산을 상속받는다. 스트럴드블럭의 생계를 위하여 작은 수입만이 남겨지게 된다. 그들은 상업이나 이윤을 위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고, 땅을 사거나 차용계약을 할 수도 없으며, 민사나 형사재판의 어떠한 경우에도 증인이 될 수 없다. 호수와 육지의 경계선을 정하는 일에도 증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90세가 되면 그들의 이와 머리털은 죄다 빠지게 된다. 음식 맛이나 식욕도 함께 없어진다. 스트럴드블럭은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는다. 그들은 항상 병을 앓고 있지만, 그 병을 낫게 할 수도 없다. 사물의 명칭이나 사람의 이름도 쉽게 잊어버리며, 그들의 친한 친구나 가족들의 이름조차 잊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독서하는 즐거움도 가질 수 없다. 책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중간 정도를 읽게 되면 앞의 내용을 벌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오락도 없는 것이다.
럭낵의 언어는 항상 변화하고 있었다. 한 세대의 스트럴드블럭은 다른 세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2백 년이 지난 다음에는 몇 마디의 일반적인 언어를 제외하고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마치 외국인 같은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다.
스트럴드블럭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스트럴드블럭이 태어나게 되면 불길한 징후로 간주한다. 그들의 생일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기록해 둔다. 기록을 보고 나이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천 년 이상 기록이 보존되는 일은 없었으며, 사회가 소란스러울 때 파손되기도 하였다. 그들의 나이를 알아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보통의 방법은, 어떤 왕이나 인물을 기억하고 있는가 물어본 다음, 역사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스트럴드블럭의 기억에 남아있는 마지막 국왕은, 그가 80세가 되기 이전에 즉위하였을 것이다. 가장 기분이 나빴던 광경은 그들의 늙은 모습이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욱 추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로 송장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었다. 스트럴드블럭의 모습에 대한 서술은 하지 않겠다. 내가 만났던 대여섯 명의 스트럴드블럭은 연령 차이가 서로 1,2백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누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인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5.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가 어떤 작가인가 알기 위해서는, 그의 유명한 에세이 「겸손한 제안 A Modest Proposal」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나는 겸손하게 제안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어떠한 반발이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나와 안면이 있는 런던의 유식한 미국인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말하기를, 잘 길러진 건강한 어린아이는 한 살만 되면 찌거나, 튀기거나, 굽거나, 삶거나 간에 대단히 맛 좋고 영양 많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고기요리나 야채요리에 써도 좋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우리 모두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고 겸손하게 제안합니다. 이미 산정된 12만 명의 어린 아이 가운데 2만 명은 번식용으로 남겨두는데, 그 가운데 사내 아이는 4분의 1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양이나 소, 돼지에게 허락하는 것보다 많은 비율입니다. 어린아이는 우리 같은 야만인들이 그렇게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결혼이라는 상황의 산물인 경우가 드물 것이기 때문에, 나의 판단으로는 사내아이 하나에 여자아이 넷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남은 10만 명은 한 살 정도 되었을 때, 나라 안의 지체 높은 사람들이 사가도록 경매에 붙이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어머니에게는 마지막 달에 충분히 젖을 빨려서 살이 포동포동하게 찌도록 충고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들을 초대한 식탁에는 아이 하나만 요리해도 두 접시가 나올 것입니다. 가족들끼리 식사를 할 때에는, 아이의 4분의 1정도만 요리해도 훌륭한 음식이 마련될 것입니다. 후추와 소금을 약간 쳐 두었다가, 특히 겨울일 경우 4일째 되는 날 삶아먹으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스위프트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이와 같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겸손한 제안」은 아일랜드에서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학자나 경제학자가 하는 것처럼, 일정한 수치를 통해 이러한 사태를 예증해 보인다.

Gulliver's Travels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
신현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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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믿나?"
"아뇨."
"왜지?"
"나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무슨 뜻인지 알아. 자네가 온 이유를 말해 볼까. 뭔가를 알기 때문에 온 거야. 그게 뭔지 설명은 못 하지만 평생을 느껴왔어.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말이야.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 조각조각 깨진 파편처럼 마음속에 있는 그것이 자넬 미치게 만들지. 그 느낌에 이끌려 온 거야. 뭘 말하는 건지 알겠나?"
"...매트릭스요?"
"그게 뭔지 알고 싶나? 매트릭스는 모든 곳에 있어. 우리 주위의 모든 곳에. 바로 이 방안에도 있고, 창 밖을 봐도 있고, TV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있어.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무슨 진실요?"
"네가 노예란 진실."

앤더슨과 모피어스의 대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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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이 열역학 제1법칙뿐이라면 에너지가 고갈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석탄 한 조각을 태운다면 태우기 전과 후의 에너지 총량은 같겠지만 일부는 아황산가스와 기타 기체로 바뀌어 대기 중으로 흩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에너지는 없지만 이 석탄 한 조각을 다시 태워서 같은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열역학 제2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 제2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여기서 벌금은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Entropy이다.

2.
엔트로피 법칙이 가장 중요해지는 순간이라면 시간을 정의할 때일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시간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때 나는 시간을 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려고 들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3.
엔트로피 법칙은 유용한 에너지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렇게 새로 형성된 환경이 앞선 환경보다 더 열악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이유는 각 단계를 지날 때마다 이 세계가 갖고 있는 유용한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계의 전체적 무질서는 항상 증가하고, 유용한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감소한다. 인간의 생존이 유용한 에너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갈수록 열악해지는 환경 속에서 버티려면 일을 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열역학 환경에서는 인간의 육체만으로 늘어난 작업을 감당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적절한 수준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복잡한 기술을 개발해야만 했던 것이다.

4.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생존을 위해 1인당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효율적인 것이 아니다. 효율성이라고 하는 것이 ‘일을 줄이는 것’으로 정의된다면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일이란 간단히 말해서 유용한 에너지를 써버리는 것이다. 백만 년 전과 비교할 때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우리는 당시보다 1인당 1,000배의 에너지를 ‘소비’해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이 근육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기계에 의해 수행된다는 이유 한 가지 때문에 현재 우리가 일을 ‘적게’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5.
석탄은 또한 나무보다 캐기도 힘들고 처리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사용가능한 형태로 바꾸기까지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 이유 역시 제2법칙에 의해 설명된다. 세계의 유용한 에너지는 끊임없이 무용한 에너지의 형태로 분산된다. 인간은 가장 먼저 손에 넣을 수 있는 에너지부터 쓰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대의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보다 더 구하기 어려운 에너지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나무를 베는 것보다 석탄을 캐고 처리하는 것이 더 힘들다. 유전을 개발하고 석유를 뽑아 올리는 것은 더 어렵다. 원자력 발전은 더더욱 어렵다.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은 『빈곤과 진보Poverty and Progress』라는 저서에서 경제발전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고찰하고 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인간은 원료와 그 원료의 추출방법을 끊임없이 바꿔야만 했다. 구하기 쉬운 원료에서 어려운 원료로 넘어감에 따라 인간은 점점 더 복잡한 처리 및 생산기술을 이용해야 했다. 가장 광범위한 생태학적 맥락에서 경제발전이란 좀더 집중적으로 자연환경을 착취하는 방법의 발전을 의미한다.’

6.
앨런 보이드Alan Boyd 전 교통장관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자. “도시의 건물 사이로는 유독 가스가 흘러다니고, 검은 연기가 태양을 가리고, 간선도로는 여기저기 패여 있고,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깔려 있고, 비행기들은 착륙하지 못해서 상공에서 맴돌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느라 길을 가득 메우고 서로 밀치고 있다.” 전쟁에 휘말린 도시에 대한 이야기인지 교통체증의 도시 이야기인지 판단할 수가 없을 것이다.’

7.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로마의 멸망은 로마의 융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로마는 주변의 농촌에서 얻은 자원이 아니라 가까운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약탈한 자원을 이용해 거대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거대도시 로마를 유지하는 데 이용된 바로 그 방식이 로마를 멸망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도시팽창의 길로 들어선 순간 로마는 이미 쇠락을 시작했던 것이다. 도시가 커짐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고 더 많은 에너지가 흘러들수록 무질서도 커졌다. 또한 무질서가 커짐에 따라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통치기구는 더욱 비대해졌다. 이러한 과정은 무한히 계속될 수가 없었다. 군대에 의해 유지되던 에너지 공급선은 너무 가늘어져 마지막에서 군대가 더 많은 에너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토양을 집중적으로 착취한 결과 농업에서도 수확체감현상이 나타났다. 노예들을 먹이고 재우는 비용도 지나치게 비싸졌다. 로마의 행정체계는 너무나 비대하고 비효율적이 되어 도저히 지탱할 수가 없었다. 결국 팽창할 대로 팽창한 이 거대도시는 안팎으로 와해되기 시작했고, 게르만 정복 후에야 에너지 평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후의 로마인구는 3만 명(전성기의 로마 인구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에 불과했다.

8.
밀도가 높은 고에너지 환경으로 인해 인간관계와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미묘한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맨하탄 중심가를 걷는 사람은 반경 10분 이내의 거리에서 22만 명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일종의 선택기법을 개발한다. 그러므로 사람 하나를 만날 때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과 정도가 시골사람보다 적은 것이다. 도시사람들은 거지나 술취한 사람 같은 ‘저우선순위’ 대상은 무시해버린다. 범죄가 발생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사람은 수십 명씩 되지만 경찰에 알리거나 피해자를 돕는 사람은 없다. 대도시에서 거리를 걷는 것은 달갑지 않은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인상을 쓰며 도로를 통과하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심리적인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대도시 사람들은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사람들보다 교제하는 사람의 수가 훨씬 적다. 대부분의 경우 이웃사람은 전혀 낯선 사람이다. 우리는 점점 구명보트에 탄 선원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물인데 정작 마실 물은 한 방울도 없는 것이다.

9.
세계의 자원은 유한하다고 미친 듯 외치면서 미래세대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보전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은 세계 총인구에 비춰볼 때 부유한 소수에 불과하다. 풍요의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수준을 확보하는 것조차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사람들도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0.
1978년 12월 『Atlantic Economic Journal』에 기고한 글에서 니콜라스 죠르제스크-레겐은 태양 에너지 접근방식에서 볼 수 있는 결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태양 에너지를 직접 활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오늘날 제시되어 있는 방법은 모두 ‘기생적’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오늘날의 태양 에너지 기술은 주로 화석연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집열판을 위시하여 여기 필요한 모든 장치는 태양 이외의 다른 에너지원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른 모든 기생생물과 마찬가지로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태양 에너지 기술은 ‘숙주’가 살아 있을 동안만 존재할 수 있다 ... 지상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의 집중도는 매우 낮기 때문에 이것을 수집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시설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지상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의 강도는 고정된 것으로, 인간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
『바가바드 기타Bhagavad-Gita(힌두교의 고전)』에 이런 말이 있다. “물질에 대해 생각하면 인간은 거기에 집착한다. 집착함으로써 갈망이 생기고 갈망함으로써 분노가 탄생한다. 분노함으로써 망상이 생기고 망상은 기억을 지워버린다. 기억을 잃으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분별력이 없어지면 파멸하는 것이다.” 현대적이고 좀더 친숙한 말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차가 없으면 주유소에서 줄 서기, 교통혼잡, 차량도난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Jeremy Rifkin with Ted Howard
이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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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취업 과정에 빨간 신호를 켠 그 두 질문은 무엇일까? 하나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했습니까?’ 였고, 다른 하나는 ‘이전 직장은 왜 그만두었습니까?’였다. 구직 기간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자신이 무능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 “불황이 오래 지속되어서 다들 취업이 어렵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전 직장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인상을 줄까 봐, ‘이전 직장의 근무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상사가 얼마나 무능했는지, 좀 더 좋은 직장을 얼마나 열망했는지’ 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마크는 이런 대답이 인사 담당자의 눈에 얼마나 부정적으로 비춰지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도 그것을 지적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접관은 오히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듯 맞장구를 쳐주기까지 했다.
이전 직장이나 상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지원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사람으로 보인다. 불평이나 불만이 많은 사람은 조직의 분위기나 팀워크를 와해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런 사람을 좋아할 리 없다. 또 자신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유가 취업 시장이 좋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도 결코 이롭지 못한 처사다. 인사 담당자들은 아무리 경기가 나빠도 유능한 인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2.
우선, 이력서를 가능한 빨리 제출하라. 당신이 미처 모르는 내부적인 데드라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이력서는 공고일로부터 가능한 빨리, 정해진 양식에 맞추어 회사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제출하라.
2주 안에 연락이 오지 않으면 이제 담당자를 찾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이번 채용을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그의 이름과 직책을 적는다. 만일 규모가 큰 회사라면 지원부서의 책임자 이름도 물어보라.
이번에는 당신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고품질 종이에 프린트하여 우편으로 보내라. 수신인은 당신이 전화로 알아낸 채용담당자에게 보낼 것이다. 만일 담당자 이름을 알아낼 수 없다면 회사 웹사이트에 들어가 가장 관련 있는 부서를 찾거나, 지원하는 부서의 책임자를 찾아라. 아무리 웹사이트를 뒤져도 CEO 이름밖에 없다면 주저 말고 CEO 앞으로 보내라.
편지 봉투의 겉면은 손으로 쓰고 봉투 아랫부분에는 ‘개인 정보/기밀 우편’이라고 표시하라. 웬만하면 비서는 이런 우편물을 대신 열어 보지 않는다. 이렇게 전달되는 이력서는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
첫째, 당신 이력서가 회사의 핵심 인물 손에 직접 들어간다.
둘째, 당신 이력서를 받은 직원이 인력개발팀에 직접 전달한다. 마치 회사 내부의 누군가가 이력서를 직접 가져다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셋째, 유난히 질이 좋은 종이에 이력서를 프린트해서 제출하면 다른 이력서 가운데서도 눈에 띄기 쉽다. 이메일이나 팩스로 보내온 다른 이력서들은 똑 같은 회사 용지에 일괄적으로 프린트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다른 종이가 있으면 돋보이게 마련이다. 종이의 질, 무게, 심지어 접어놓은 모양조차도 다른 이력서와는 달라 보일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제출하는 이력서를 접수하지 않는다는 회사도 많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채용 담당자가 지원자 명단을 훑다 보면 당신의 이름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혹시나 일이 잘 풀리면 당신 이력서가 유일하게 직접 전달된 이력서가 될 수도 있다. 지원자로서 나쁠 게 없는 상황이다.

3.
제일 좋은 방법은 서너 편 정도의 짧은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야기 하나당 2~3분을 넘기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는 주로 과거 직장 생활에서 가장 큰 성취를 이룬 순간, 당신이 최근에 학교를 졸업했다면 학창 시절에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 같은 성공담이면 된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당신이 해냈던 이야기나, 당신이 영웅이 됐던 이야기, 회사의 생산성을 20퍼센트 향상시킨 새로운 생산 방법을 제안한 이야기 등 무엇이든 좋다. 당신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정적인 사람으로 보일 소지가 있는 이야기는 조금도 드러내면 안 된다.
당신의 모든 장점을 한데 모아 스타로 돋보이게 하는 서너 편의 짧고 긍정적인 성공담을 만들어라. 그 가운데 하나는 고객이나 데드라인 때문에 애를 먹다 결국 성공적으로 해결한 이야기를 선택하라. 그런 다음, 면접관이 던진 질문이 조금이라도 당신이 준비한 이야기와 관련성이 있다 싶으면 즉시 하나를 풀어놓는다.

4.
또 한 가지 효과적인 준비 전략은, 회사원으로서 당신이 지닌 최고의 자질을 열 가지 정도 써보는 것이다. 조직적이다, 에너지가 넘친다, 꼼꼼하다, 열심히 일한다, 팀을 이루어 하는 일에 능하다, 업무를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등 다른 지원자보다 뛰어난 당신만의 장점이 무엇인지, 유력한 후보자로 각인시킬 만한 장점이 무엇인지 적어보라. 이런 작업은 가장 효과적인 성공담 한 편을 만들고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5.
만약 면접 중에 반드시 질문을 해야 한다면, 당신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질문 네 가지를 알려주겠다.
첫째, 제가 지원한 직책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답변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 당신이 어떤 것에 집중하여 강조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이런 질문을 통해 회사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에 맞게 자신의 장점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회사가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둘째, 이 직책에 이상적인 적임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면접관의 대답을 통해서 회사가 바라는 기대치를 알 수 있고, 당신은 거기에 맞춰 자신의 자질 가운데 필요한 것을 집중적으로 강조할 수 있다.
셋째, 이 직책을 맡은 사람이 업무 초기에 어떻게 일을 처리하기를 바라십니까?
이 질문은 입사 초기에 무엇에 중점을 두고 일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아울러 인사 담당자에게 당신이 그 자리에 앉은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필요한 업무를 설명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당신이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기 시작한다.
넷째, 전임자가 특별히 잘한 업무는 무엇입니까? 또 전임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 처리를 했으면 하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이 자리가 이미 퇴사했거나 다른 부서로 옮긴 전임자를 대신하는 경우에 해야만 하는 질문이다. 이러한 당신의 질문에 면접관은 마음속으로 당신을 전임자와 전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인사 담당자는 전임자가 실패한 자리에 똑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 혹은 성공적으로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 두려움을 표면화하여 잠재우면 당신은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꼽힐 수 있다.

6.
만일 원서를 낸 회사가 당신의 해고 사실을 알아냈다면 면접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될 수 있으면 해고와 같은 정보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감추어야 한다.

7.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집요하게 묻는다. “제가 어떻게 했어야 탈락하지 않았을까요?”, “다음번에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등등. 하지만 이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 다시 그 회사에 지원해도 탈락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8.
면접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계속 인연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인사 담당자들이 당신에게 알려주지는 않지만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있다. 바로 수습 기간 이후 재채용에 관한 문제다. 대개 회사들은 새로 채용된 사람에게 3개월 수습 기간을 적용하곤 한다. 그런데 이 기간 내에 새로 채용된 사람이 일을 제대로 못하면 회사는 급하게 대처 인력을 찾는다. 이 점을 알고 계속 연락을 취한 구직자들이 종종 기회를 얻는 경우가 있다. 대체 인력이 필요할 때, 인사 담당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게 마련이다. 만약 당신이 인사 담당자와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 그 자리에 필요한 기술과 자격을 이미 검증받은 당신은 가장 선택받기 쉬운 대상이다.

9.
운동 선수들은 규칙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슛을 성공시키고, 상대방을 때려눕히고, 터치다운 하는 것을 시각화해서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나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운동 선수들은 재미 삼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운동 선수가 하는 독백을 들어보면 “경기가 잘 풀렸으면 좋겠다”라거나 “실수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 최고다. 가장 위대한 최고의 챔피언이다!”라며 되뇐다. 이는 특히 압박감이 심할 때 마법과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신시아 샤피로
전제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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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전에 먼저 가격표를 디자인한다." 이것은 이케아 제품에 전부 적용되는 말이다. " 3천 마르크짜리 책상을 디자인하는 것은 어떤 설계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 훌륭한 디자인이란 기능적이고 멋진 모습이면서도 단 200유로의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책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캄프라드는 <어느 가구상인의 유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케아에서 새로운 제품을 구상하고 창조해 내는 이들은 스케치북이나 컴퓨터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산시설에 가서 확인하고 평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곳에서 생산 담당자와 디자이너는 어떤 기술적 가능성들이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발생하는지 경험할 수 있다. 그들은 생산 전문가들로부터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계와 기타 생산설비를 가지고 추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가구 제작의 다양한 형태에 따라 비용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듣게 된다. 그런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책상이나 장롱 혹은 서랍장의 형태나 크기를 미세하게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도 훨씬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
이케아 매장에서 낮은 판매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가구를 가능한 한 작고 납작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콤팩트한 포장은 공간을 적게 차지하기 때문에 이케아는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다. 화물차 한 대, 컨테이너 하나, 화물 기차 한 량에 더 많은 가구를 실을 수 있게 된다. 그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케아가 가구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납작하고 작게 포장하지 않고 완성된 형태로 공급하려면 현재보다 약 여섯 배의 운송량이 발행하게 될 것이다. 노동 비용 역시 작고 납작한 포장의 경우 현격하게 낮아지는데,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할 수많은 제품의 운반을 지게차로 단번에 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의 가구 전문가들은 더 적은 공간을 차지하면서 운송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사이 이케아는 고객이 직접 자동차에 싣고 가져갈 수 있도록 납작하게 포장된 소파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케아의 한 여류 디자이너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화단용 물뿌리개를 개발했다. 기존의 물뿌리개와는 달리 포개 놓을 수 있어서 공간을 절약해 운반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3.
스웨덴 예술노조의 위원장 그레고로 파울손은 1919년 ‘아름다운 일상용품’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은 그 디자인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이다.”

4.
이케아의 전등은 보통 음악, 화학 혹은 기상학에서 이름을 가져오는데, 오르겔, 크빈테트, 칼슐 등이다. 커튼이나 장식용 천들은 브리트와 이네즈 같은 여자아이 이름을 갖는다. 의자와 책상은 브로르, 알렉산더, 올레 같은 남자아이 이름을 사용한다. 부엌용품과 생활용품들에는 스웨덴 동사를 사용한다. 가령 나무 절굿공이에는 크로사(빻다)라는 이름을, 다리미판에는 프레사(누르다)라는 이름을 붙인다. 물론 모든 이름이 스웨덴어는 아니다. 예를 들면 침대와 옷장의 이름은 종종 노르웨이의 지명에서 따온다. 식탁과 식탁의자에는 핀란드 이름을 붙이고, 카펫은 덴마크의 마을이나 도시이름을 사용한다. 이런 이름들은 이케아 고객에게 독특한 매력을 풍기며, 이름 자체만으로 구매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레크스비크와 레크달, 트레블리그, 스누티그, 드로펜, 플림릭 같은 물건을 사들고 간 사람은 가구를 조립하기도 전에 벌써 크게 웃기 마련이다.”

5.
독일 고객들은 1974년 배포된 첫 번째 이케아 카탈로그에서 이미 이런 글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상당히 대담하고 과격한 문구도 함께 적혀 있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의 조립설명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케아에서 고객들은 스스로 포장하고 조립해야 했다. 다시 말해 생산과정의 일부를 맡게 된 것이다. 디자인 전문가 베른트 폴스터는 이케아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케아의 비결은 처음부터 합리화에 있었습니다. 이케아는 생산에서만이 아니라, 운영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합리화의 비결을 일관되게 적용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를 거실까지 연장한 것입니다.”

6.
많은 이케아 고객들은 이케아에 대해 미움과 애정을 동시에 느낀다. 이케아는 고객들에게 일종의 초등학교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살아가면서 힘들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요리 전문가 볼프람 지벡은 주간지 <디 차이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이케아에서 작은 책상을 사서 조립했습니다. 꼬박 이틀 낮, 이틀 밤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체중 2킬로그램을 잃었고, 아내의 신뢰를 잃었고, 아이들의 존경심을 잃었습니다.”

7.
종종 이케아는 스스로 자체 베스트셀러의 저가형 버전을 출시하기도 하는데 이케아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경쟁자를 완전히 따돌리기 위해서이다. 3단 서랍장 말름은 독일에서 49유로 95센트로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과 거의 같은 모습의 쿨렌 서랍장은 29유로 95센트에 판매되고 있다. 둘 사이의 차이는 말름이 8센티미터 속이 더 깊은데다 무늬목을 사용했으며 슬라이딩 서랍이 달려 있는 반면, 쿨렌은 파티클보드와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쿨렌은 다른 업체의 저가 제품에 맞서서 말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와 같은 이유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클리판 소파는 2006년 클로보라는 이름의 작은 동생을 얻게 되었고, 사진틀 리바는 값이 더욱 저렴한 라블라를 보충 병력으로 지원받았다.

뤼디거 융블루트
배인섭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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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것은 “열 개의 사과 가운데 세 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느냐”는 산수 문제이다. 역시 한국에서는 산수도 먹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세 개가 남았다고 대답한 아이다. “세 개를 먹었는데 어떻게 세 개가 남을 수가 있느냐”는 선생님의 추궁에 대해서 아이는 거침없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요. 먹는 게 남는 거래요.”

2.
호저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가 돋친 초원의 동물이다. 추운 겨울에는 몸을 덥히려고 가까이 다가가다가 가시에 찔리게 되고 멀리 떨어져 혼자 있으면 추위와 외로움에 떨게 된다. 그래서 너무 가까워 찔리지도 않고 너무 멀리 있어 춥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낸다.

3.
냅스터나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 사이트들이 오프라인의 음반업자와 충동하여 법정으로 가는 사태가 벌어지면 오히려 그 긴장 관계를 이용해서 ‘아이포드’와 같은 신개념 제품이 전 세계 히트 상품으로 부상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워크맨 같은 오프라인 휴대 음악 재생기를 온라인의 인터넷 음악사이트에 연결시키는 디지로그 발상 하나로 세계를 뒤엎었다. 그래서 퓨전(fusion)을 미래의 비전, 즉 퓨처 비전(future vision)의 준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4.
돈과 말과 피의 글로벌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미 2000년 전 『여씨춘추』에서도 엿볼 수 있는 거대 담론이다. 활을 잃어버렸던 형(荊)나라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형나라 사람이 잃은 활을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니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잃은 것을 사람이 주울 것이니) “형나라라는 말은 빼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공자의 말을 들은 노자가 말했다. (천지의 것이 천지에 있으니) “사람이란 말은 빼는 것이 좋다.”

5.
‘천평어람(天平御覽)’ 등에 실려 있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고사에서 충격적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다. 제(齊)나라에 사는 한 처녀가 두 남자에게 청혼을 받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동쪽 마을에 사는 청혼자는 돈은 많으나 얼굴이 밉고, 서쪽 마을에 사는 청혼자는 얼굴은 잘났지만 가나해 먹을 것이 없다고 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부모의 말에 그 처녀는 선뜻 동과 서 두 곳으로 다 가겠다고 대답을 한다. 밥은 부잣집 동쪽 남자에게 가서 먹고, 잠은 잘생긴 서쪽 남자와 자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동서병합의 모순논리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해보면 틀림없이 에러 메시지가 나올 것이다. 동가식서가숙의 이 고사가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졌으면 오늘날에는 “아무 데서나 먹고 자며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뜻이 바뀌었겠는가.
그러나 21세기 상황에서는 동에서 먹고 서에서 자는 불량주부형의 겹치기 기술이 예사롭게 벌어진다. 전화 기능에 카메라와 녹음기와 음악을 재생시키는 오디오 장치가 한 손 안에 동거하고 있는 휴대전화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절대로 동석할 수 없었던 팝과 오페라가 같은 무대에서 만나는 팝페라처럼 예술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 현상. 바이오 기술로 메추리와 닭을 하나의 생물로 만들어내는 이종배합(異種配合)의 ‘키메라’ 현상. 평지에서는 건전지로 움직이고 고속도로나 언덕에서는 휘발유로 달리는 ‘하이브리드 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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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호협동은 분업과 교환을 통해 일어난다. 시장경제는 자발적 교환에 의한 상호협동의 체제다. 이러한 사실은 레너드 리드(Leonard Read)가 쓴 <나는 연필입니다>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연필은 나무, 아연, 구리, 흑연 등의 복합체다. 산에서 잘 자란 삼나무를 베어 통나무 상태로 철로를 통해 제재소로 운반된다. 제재소로 운반되기까지는 톱과 트럭, 밧줄 등 수없이 많은 도구가 사용된다. 그 도구를 만드는 데도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다양한 기술이 사용된다. 금속 광산에서 채굴된 철은 제련을 통해 톱•도끼•모터 등으로 만들어지고, 심고 가꾼 대마에서는 무겁고 튼튼한 밧줄이 만들어지며, 벌목 인부들의 노동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벌목 인부가 먹는 한 끼의 식사에도 몇천 명의 노고가 담겨 있다. 또한 화차, 철도선로, 기차 엔진을 만든 사람들과 통신 시스템을 만들고 설치한 사람들의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제재 작업도 마찬가지다. 우선 삼나무를 연필 길이로 자르고 연필 두께의 판자로 만든다. 그리고 판자를 가마에 넣어 건조시키고 엷게 색을 입히는데, 그 과정에서도 색감과 가마를 만드는데 여러 가지 기술이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열과 빛, 동력, 벨트와 발전기 등 제재소에서 필요한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연필 공장에서는 복잡한 기계가 작동하며 각각의 판자에 흑연을 붙인다. 흑연 역시 복잡하다. 흑연은 실론 섬에서 채굴된다. 흑연 광산의 광부와 그들이 사용하는 많은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 흑연이 선적될 때 사용하는 마대를 만드는 사람들, 흑연을 배에 싣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배를 만든 사람들의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지우개를 끼우는 쇠테는 황동이다. 황동은 아연과 구리를 채굴한 사람과, 원광물로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황동판을 만들어낸 작업자의 노고와 기술로 만들어진다. 한편 지우개에서 지우는 성분은 ‘팩티스(factice)’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무와 비슷한 제품으로 인도네시아의 평지씨기름과 염화황을 반응시켜 만든다.
이렇듯 연필은 몇백만 명의 협동의 어느 특정인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벌목 인부, 실론 섬의 흑연 광산 광부, 공장의 화학자나 유정의 인부 등 단 한 명도 필요치 않은 사람이 없다. 놀라운 것은 유정 인부, 화학자, 흑연 채굴자, 배와 기차와 트럭 제조자, 그리고 연필 회사 사장까지도 연필이 필요해서 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행동 동기는 연필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물건이나 서비스이며,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보유한 작은 기술을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경제에서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공급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과정이 누구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분업과 교환을 통해 사회적 협동이 이루어지는 시장경제는 인간의 디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행위의 결과로서 자생적으로 형성된다.

2.
더욱 흥미로운 점은 경쟁이 심해질수록 경쟁력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초반에 가전제품 수입을 허가했을 때, 대부분은 외국 가전제품에 밀려 한국 제품이 설 땅을 잃게 될 거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현재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성능의 향상으로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1998년 일본의 캠코더 수입을 허가했을 때도 한국산 캠코더 시장이 잠식당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많았지만, 오히려 한국 제품의 품질이 향상됨으로써 수출이 크게 늘었다. 유통시장 개방에 있어서도 한국 유통업계가 모두 무너질지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같은 한국 기업이 수위를 지키고 있다. 경쟁이 경쟁력을 높인다는 사실은 정부의 보호를 받아 경쟁에 덜 노출된 농업과 교육이 경쟁에 노출된 다른 산업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
사유재산권이 경제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소련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소련에서는 모든 토지를 국가가 소유했고, 단지 1.2에이커(약 1,500평) 정도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래서 개인 소유의 토지 면적은 소련 전체의 3%에 불과했다. 그런데 전체 토지의 겨우 3%에 이르는 사유지에서 생산된 우유의 양이 소련 전체 우유 생산량의 3분의 1, 식육의 양은 소련 전체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4.
임대료 통제의 예를 보자. 임대료가 시장가격 이하로 통제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임대주택을 원한다. 시장가격대로라면 엄두도 못 낼 주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므로, 더 많은 사람이 집을 원하고 더 넓은 집을 원하게 된다. 그러나 낮은 임대료 때문에 건설에 따른 수익성이 없어지므로 신축 건물이 감소한다. 또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주택을 임대하기보다 자신들이 직접 살거나, 낡은 집을 수리하지 않게 되므로 공급이 줄어든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임대주택의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증가하지 못한다. 결국 임대료를 시장가격보다 낮게 통제하면 임대주택의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임대료 통제로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지불하려고 한다. 대기자 명단에서 우선순위를 배정받기 위해 주택 소유자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와 같은 별도의 비용이 포함되어 소비자가 지불하는 실제 비용은 불법 행위가 적발될 위험의 비용까지 추가되어 자유시장에 형성된 가격보다 훨씬 높아진다. 또한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인종이나 성별 등으로 임대하려는 사람을 쉽게 차별할 수 있다. 게다가 비용 감소 측면에서 유지 및 보수에 투자하지 않게 되어 주택의 질적 저하가 초래된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임대료 통제는 결국 그들이 더욱 비좁고 형편없는 주택에 더 많은 임대료를 지불하며 살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5.
농산물 가격을 통제하는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식료품을 싸게 구입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계를 돕기 위함이다. 그러나 농산물 가격이 통제되면 공급량이 줄어들고, 실제로 식료품을 구입하는 비용이 증가한다. 노동력이 포함된 농산물의 생산 비용을 통제된 가격이 보상하지 못할 경우에 공급량은 오히려 줄어든다. 가격 통제에 따른 인센티브의 변화로 농부들은 생산량을 줄이고, 가족을 위해 충분한 양의 농산물을 재고로 유지하게 된다. 심지어 이윤을 내지 못하는 농장을 아예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 도시로 이주하는 농부도 생겨난다. 그 결과로 식료품의 공급은 더욱 줄어드는 동시에 농산물 수요자인 도시 인구가 증가하게 된다. 결국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식료품을 구입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한다. 실제로 가격통제법을 통해 식료품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오히려 굶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심지어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겨난다.

6.
일반적으로 최저임금제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높여주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저임금제는 다른 가격하한제와 마찬가지로 공급의 과잉, 즉 노동자(노동 공급)의 과잉을 야기한다. 최저임금에서 고용하려는 고용자보다 일하고자 하는 노동자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로 야기된 공급과잉은 바로 실업을 의미한다.
최저임금제는 주로 비숙련 노동자와 젊은이들에게 타격을 준다. 기업은 생산성에 맞는 임금을 지불하려고 하는 속성을 갖는데, 최저임금제로 임금이 높아지면 그에 걸맞은 생산성을 갖춘 노동자만을 고용하려 한다. 따라서 생산성이 낮은 비숙련 노동자와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젊은이들은 고용에서 불리해진다. 그들이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다. 즉 저소득층이나 기술이 없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는 최선의 방법은 직업적 경험과 현장 학습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는 비숙련 노동자와 젊은이들의 고용을 실질적으로 방해하고, 그들이 현장에서 일하며 기술을 습득할 기회마저 박탈한다.

7.
독점에 대한 오해는 커다란 실수를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으로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 사례를 들 수 있다. 2004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인수할 경우 업라이트 피아노(upright piano) 분야의 시장점유율이 92%에 달하게 되고, 업라이트 피아노는 전체 피아노 시장의 70%를 넘기 때문에 시장지배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했고, 그 이유로 삼익악기가 취득한 영창악기의 지분 48.6%를 1년 안에 제3자에게 처분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2일 후에 영창악기는 부도로 처리되었다.
피아노 시장에서는 국내 피아노 회사들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굴지의 피아노사인 일본의 야마하(Yamaha)나 독일의 슈타인바흐(Steinbach)와도 경쟁한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야마하다. 야마하가 미국 시장의 32%를 차지하고, 삼익악기와 영창악기가 각각 26%와 9%를 차지하고 있다. 삼익악기가 영창악기와 합병할 경우, 야마하나 슈타인바흐와 국내외 시장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 이러한 경쟁 과정이 삼익악기로하여금 신기술 개발이나 효율적 생산 구조로의 전환 등을 통한 비용 절감 노력을 하게끔 부추겨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합병을 막는다면 오히려 외국 기업이 야마하나 슈타인바흐에게 경쟁의 압력을 줄여주어 그들을 돕는 셈이다.

8.
정부에 의한 통화팽창은 재화에 대한 상대가격의 변화를 일으켜 시장의 가격제도를 왜곡시킴으로써 시장의 기능을 파괴한다. 그 과정은 이렇다. 정부가 정부지출을 늘리기 위해 중앙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다. 중앙은행이 정부에게 대출한 만큼 통화량이 증가하며, 그만큼 정부의 구매력이 증가한다. 정부가 공공주택을 더 짓기 위해 그 돈을 이용하여 땅을 구매한다면, 정부의 구매로 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으로써 땅값이 오른다. 한편 땅 주인들은 정부에게 땅을 판 대가로 돈을 얻고, 아직 다른 물가가 오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돈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구입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정부에게 땅을 판 주인들이 그 돈을 이용하여 자동차를 산다고 하면, 자동차의 수요가 증가하여 자동차 값이 오르고, 자동차를 땅 주인에게 판 기업들은 더 많은 돈을 갖게 되어 다른 사람들보다 구매력이 증가한다. 땅 주인들에게 자동차를 판 기업들은 증가한 구매력을 이용하여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다. 다시 자동차기업들이 컴퓨터를 구입하면 컴퓨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컴퓨터의 가격이 오르고, 자동차회사에 컴퓨터를 판 기업들은 더 많은 돈을 갖게 되어 그들의 구매력이 증가한다. 그 과정이 계속되다가 새로 창출된 화폐를 최종적으로 얻는 사람은 비록 과거보다 더 많은 화폐를 보유했지만 그의 구매력은 증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전의 과정에서 이미 모든 재화의 가격이 올라 버렸기 때문에 보다 많은 화폐를 갖게 되었다 할지라도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그 이전과 차이가 없는 것이다.

9.
노자는 《도덕경》에서 정부의 규제가 많을수록 백성이 가난해지고,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국가에서 세금을 많이 거두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나라 다스리기를 작은 생선 굽듯이’ 하라고 했다. 그래야 국민이 잘살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
안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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